제      목: 내게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 : 1 - 10)
이      름: 정승안목사
작성일자: 2019.09.08 - 10:49
2019년 9월 8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3 : 1 - 10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다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고치게 된 기적의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천적인 질병을 안고 사십여년을 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을 향해 베드로는 병고침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의 뒷부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3 : 12 – 16

베드로는 이와 같은 기적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를 거절한 사람들의 반응과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되어있다고 말합니다.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된 사건은 누가 봐도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예수의 핍박 받으시고 죽으신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일까요?
베드로가 길게 풀어서 이야기 했지만 한마디로 하자면 복음이 우리에게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흘만에 부활하시며 영생의약속을 이루신 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해 로마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 : 16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수난과 걷지 못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난을 받는 것이나 죽는 것은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면서 상반되는 듯하며 연결점이 없어보이는 사건들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듯 기록합니다.
사도행전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시며 승천하신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심은 제자들과 더 이상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대신 약속하셨던 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불같이 임하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초대교회와 제자들의 이야기는 병고침의 기적을 통해 복음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누가의 입을 통해 드러내시는 복음의 확신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회복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3 : 16
일반적인 환경이나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초월적인 복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와 목적대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한 사망과 멸망의 현장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곳에는 불의와 사망이 왕 노릇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종으로 삼아 종의 신분으로 멸망의 자녀로 타락시켜버렸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창조의 목적대로 본래의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거룩한 존재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의 기적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거나 뭔가 특별한 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에 참여하는 능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한번 더 찾아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 : 23 -26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말씀입니다.
목적으로부터 벗어난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의 죽음이 우리 스스로 지었으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심판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과정을 베드로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사도행전 3 : 13 - 15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사랑 가득하신 뜻을 거부하고 보내신 구원자를 배척하고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징계하시거나 진멸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행위를 감당하시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베드로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능력은 은혜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거부하고, 배척하며, 악한공격을 쏟아 붓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걷지 못한 사람을 일으킨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난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걷게 될 것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능력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하루 하루를 이어갈 조금의 도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도 그 사람의 소망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나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과 같은 소망을 품었지만 이런 소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능력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자녀의 신분과 권리를 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믿는 자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복,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 : 16

어느 날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찾아가 ‘구원자로 오시는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더 기다려야 합니까’ 물어보고 오라고 지시합니다.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가복음 7 : 21, 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구원자요 메시야의 일은 새롭고 크고 놀라운 일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이제야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신분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매이지 않고 거룩한 가치를 따르며 살게 되는것입니다.
회개는 이런것입니다.
지난 한 주, 하루, 어느 때 지은 죄에 대한 고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삶을 살아가는 자유자의 권세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약속하셨던 그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를 불러 회개하게 하시고 그 은혜 아래 두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찍부터 신앙생활하는 것을 후회하는 듯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다, 느지막하게 회개하고 천국가면 좋을건데 거룩한 척 살려니 양심에 가책되고 힘드네’ 합니다.
‘하나님 저를 갑자기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회개할 시간을 주시고 데려가 주세요’ 합니다.
이런 마음들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 안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밖에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온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을 만한 가치있는 존재이거나 선택받을 만한 무엇인가를 해서 얻어 유지하는 신분이 아닙니다.
내가 거부하고, 내가 알지도 못했고, 원하거나 이해할 수 조차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능력으로 나를 지목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 : 6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자녀가 되는 은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매 순가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의 삶은 복된 삶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을 향해 지상명령을 하실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라고 하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명령하신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명령에 순종하는 제자들과 함께하실 것인데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권세자의 약속입니다.
권세자이진 예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이사야는 구원자요 메시야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 : 1 - 3
오셨던 예수님은 영광가운데 모든 권세를 대동하고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가 그렇게 중요한 분이신지 두렵고 떨림으로 영접해야 하는 분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존재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오히려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그런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 능력은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사도행전 3 : 13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되어진 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때가 아니라 멸시와 천대와 거절과 고난의 순간이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이 되어 가르치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역사에 ‘복음’이 세상이 말하는 권세와 권능으로 전해진 역사가 있었습니까?
초대교회 사도들부터 쫒겨나고 밀려나듯 사역의 자리를 이동해야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는 자들과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던 자들은 언제나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때로는 핍박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죽임 당하기 일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면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펼치셨습니다.
거부당하고 무시당하던 자리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며 보내신자의 권세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의 자리, 핍박과 외면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세상의 끝, 땅끝까지 밀려나고 쫒겨날지라도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을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멸시했으며,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왔지만 조롱하고 죽여버렸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세상은 결코 환영하며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구원해 보라는 조롱 속에 죽으셨지만 그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회복케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예수가 있으십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 : 6
세상이 갖지 못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분 안에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