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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주 안에 서라 (빌립보서 3 : 17 - 4 : 1)
2016년 10월 30일 주일예배 삼위일체주일 후 23주
빌립보서 3 : 17 – 4 : 1 주 안에 서라

한국여권으로 독일을 방문하는 사람은 그 목적대로 3개월의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 머물거나 여행 외의 다른 목적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비자를 받아야합니다.
저도 비자를 받기 위해서 외국인청에 갔을 때 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있었습니다.
한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문화와 예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고유하면서도 탁월함을 보여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래 전 독일에 오셔서 삶으로 국격을 높여놓으신 교민들의 수고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비자를 받고 나면 정해지 기간과 정해진 기준 안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독일시민은 아니지만 일정의 조건을 충족하는 범위안에서 마치 독일시민 처럼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권리가 주어진 것은 타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고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이러한 특권이나 자유를 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이 시민이 되거나 귀족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인과 다른 하나는 야만인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나라들인 이집트나 페르시아등의 문명이나 문화를 높이 사기도 했으며 존중했지만 여전히 야만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인이나 페르시아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를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페르시아나 이집트 사람들은 엄청난 기술과 문명을 가지고 있지만 왕이나 파라오의 말 한마디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시민권을 가지면 누구에 의해서도 함부로 구속되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처벌하거나 처형하려면 반드시 법정에 세워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 개인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그에게 주어진 시민권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리스이지만 한계는 있습니다.
그리스 시민권은 노예나 외국인,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편적인 자유가 아닌 소수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리였습니다.

서구의 패권을 로마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전쟁을 통해 점령한 나라에 로마의 군인들을 주둔시키며 주권을 지켰습니다.
아울러 로마의 시민이 되길원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여 특권들을 부여했습니다.
그리스의 기준인 시민권의 한계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반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갖기 위해서는 군인으로 수년간 목숨을 걸고 전쟁에 살아남아야 했으며 때로는 많은 재물을 헌납하고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노예였든지 외국인이든지 관계없이 로마의 시민권을 얻으면 많은 특권과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의 독자들이 사는 지역 ‘빌립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줄리어스 시저를 살해한 부루터스와 카사우스의 군대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군대사이에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장군들과 병사들을 빌립보에 정착 시켯습니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와 아토니우스의 유명한 악티움해전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면서 자신을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면서 아구스도라고 부르고 빌립보를 중요한 군사기지로 삼았습니다.
빌립보는 로마군인들과 퇴역한 군인들이 사는 식민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빌로보에 살던 시민들 또한 로마시민권을 주며 로마인들과 동일한 권리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개인 재산을 갖을 수 있는 자유와 여러종류의 세금을 감면받고 재판권까지도 갖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로마의 본토에 살지 않지만 로마인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에게 로마의 시민으로서의 긍지는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빌리보 사람들에게 특화된 전도자가 바울이었을 것입니다.
태어나면서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본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또 바울을 본받고 행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빌립보서 3 : 17
이 말씀만 보면 바울은 마치 자신이 교주인것처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 또한 본을 받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 : 10
바울사도가 본으로 삼고 따르고 있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갖고 있었던 특권과 이루어낸 업적들을 본받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복음을 향해 고난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생명의 위협과 사망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 : 1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순종하셨던 것처럼 바울사도 역시 주님을 본받아 복음을 위해 모든 특권들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것입니다.
바로 그런 자신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바울을 본받고,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본받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참다운 어른이 없다는 탄식들을 자주 합니다.
교회도 믿음의 본이 선생을 만나기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오히려 믿음의 본 뿐만 아니라 삶의 본도 되지 않는 목회자나 중직자들의 일탈이 복음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사건들이 넘처납니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 : 12
바울 자신도 이미 온전히 이룬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아직도 예수님의 본을 쫒아 노력하며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사도의 겸손함이 넘치는 말씀이지만 연약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야 할 본은 믿음의 선배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보여주었던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본입니다.
우리를 높이고 드러낼 세상의 특권들을 내려놓고 겸손함으로 복음을 향해 한걸음, 한 걸음 가는 것 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으로 생명을 구원한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는 바로 그 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육체의 욕구를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거기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사도는 십자가의 원수된 이들의 마침이 멸망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의 악한 행위의 열매가 멸망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 멸망은 세상의 무너짐이나 흩어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 영원한 형벌이 그들의 열매가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줄 알고 거룩하기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원수 된 사람들은 ‘저희의 신을 배’로 알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욕심을 신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탐욕에 자신을 내어주는 방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욕심은 이미 눈을 멀게 하고 지혜를 어둡게 해버렸습니다.
세상에 자신들의 허물이 드러나도 전혀 창피해 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마땅히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돌이켜 선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조차도 자신의 영광인줄 착각합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랑합니다.
그들의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윤리마저도 허물어져 버렸지만 바꾸려고 하지 않고 정당화하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기 까지 합니다.
결국 그들의 생각은 ‘늘 땅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인 ‘그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편지를 쓰던 당시에도 교회를 돌며 이단의 사상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왜곡하여 율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일뿐입니다.
그들의 부정과 타락과 방탕한 삶은 복음을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안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은 커다란 위험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제2의 로마라는 빌립보에 살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민권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바울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그 이름이 하늘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권리는 하늘의 주권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빌립보와 같은 로마관할 아래 있는 도시와 로마시민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나 내부의 내란이 일어났을 때 로마군대의 보호와 구원을 보장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로마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적들의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원해내는 로마의 황제는 그들의 구원자였습니다.
본토 로마에 있지 않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시민권의 위대한 권리와 능력이 그들을 자부심과 긍지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런 이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늘은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온 우주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모든 세계와 만물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를 위협하고 공격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와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는 선포입니다.
제 마음에도 묻고 다시 여러분에게도 묻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부심과 긍지가 있으십니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하늘의 시민답게 땅의 일들에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인들과 성도인 저와 여러분에게 땅의 일에 매여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구세주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날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과 찬양 가득한 나라에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욕심이 이끄는 데로 끌려 다녀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 오시기까지 변화될 영광의 몸과 하늘에 펼쳐질 영광스러운 나라에 동참하게 될 것을 소망하며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있는 것이 아니라 서머나 교회처럼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믿음의 선배들이 본을 보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본이 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섬기며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희생하며 세상에 펼치는 사랑이 누군가의 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안에 굳게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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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0.30 -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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