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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주의 것이라 (로마서 14 : 7 - 9)
2016년 11월 6일 주일예배 Drittletzter Sonntag im Kirchenjahr
로마서 14 : 7 - 9 주의 것이라

어떤 학자들은 역사는 힘에 의해서 쓰여진다고 합니다.
전쟁에 승리한 민족이나 나라에 유리하게 쓰여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이나 암투에 희생되는 민족이나 나라는 외곡 되어지고 축소되어 역사에 기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시대적인 권위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부흥과 황금시대는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승리하던 시대와 부흥의 시기는 다른 주변 국가들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짧기만 합니다.
늘 주변의 외부세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했었고 결국 국가가 무너지게 됩니다.
귀족들과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으며 성전은 두 번이나 파괴되었습니다.
주권도 잃어버렸고 국토의 소유권도 잃어버렸습니다.
오랜시간 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은 세계를 떠도는 존재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건 세상적인 의미에서 그다지 불행한 역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지나온 역사들을 돌이켜보며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굴곡은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약속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책임지시겠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약속하며 모든 규례와 율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약속은 처음 약속을 받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출발했으며 이 약속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약속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길 원하며 그 앞에 순결하게 나아갈 때는 승리의 역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율법을 업신여기던 때는 패망의 역사가 쓰여졌던 것입니다.
많은 시간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행하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21 : 25절은 이스라엘을 너무도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 : 25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떠났다는 이야기 입니다.
결국 자기 마음에 이끌리는데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주변 강국으로부터 공격과 시달림을 당한것입니다.
농경사회의 전쟁은 농사철에는 암묵적으로 휴전을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할 때가 되면 수확한 모든 곡식들을 다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그들의 삶은 처참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만 한탄할 뿐 왜 그러한 상황이 자신들에게 왔는지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있었거나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당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던 요시야왕이 집권했었습니다.
요시야는 신앙의 개혁운동을 펼치며 그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던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앗수르와 애굽과 바벨론 사이의 전쟁에 목숨을 잃은 요시야왕을 대신해 세워진 왕들은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감옥에 가두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합니다.
결국 나라는 전쟁에 패하고 왕이 끌려가는 수모를 겪게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찾아오셔서 일어나 토기장이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들어서서 토기장이를 만납니다.
토기장이는 흙을 빚어 생활에 필요한 그릇과 항아리들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들어갔을 때 토기장이가 돌로 만든 물레에 흙을 올려놓고 그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물레로 그릇을 만드는 장면을 보신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모터가 평평한 판을 돌려 도공이 원하는 모양으로 그릇을 만듭니다.
당시 도공들은 두 개의 돌이 연결된 기구를 사용했는데 발로 굴려서 판을 돌렸습니다.
이 물레에 흙이 뱅글뱅글 돌아갈 때 도공의 노련한 손은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토기장이는 기구에 흙을 올려놓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담을 접시를 만들지, 따뜻한 스프를 담을 그릇을 만들지, 아니면 물그릇이나 컵을 만들 것인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적당한 흙을 도구에 올려놓고 원하는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원하지 않는 모양이나 생각과는 다른 모양이 되어지면 흙을 추스려 다시 원하는 모양을 만들것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예레미야 18 : 4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예레미야 18 : 6 - 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에 보내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마치 토기장이이며 이스라엘은 토기장이의 손에 의해서 빚어지는 흙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생성과 흥왕과 멸망의 주권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민족이나 국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 경건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민족이요 국가입니다.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민족이나 국가가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진노를 거두실것입니다.
반대로 복을 주시기로 약속한 민족이나 국가일지라도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면 전능자의 뜻을 돌이켜 복을 거두어가실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전쟁 틈바구니 속에서 어느 나라가 자신들을 도와주며 자신들을 책임져 줄 나라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앗수르가 주도하는 애굽과의 동맹을 막아 섰다가 큰 화를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자신들의 왕은 전장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어 왕을 세웠지만 착고가 체워져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왕족과 귀족과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가 큰 어려움에 처한것입니다.
앗수르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 같으면 끝없이 그 권력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생명을 구할것입니다.
그러나 점점더 커져가는 바벨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대국인 앗수르와 애굽을 상대로 조금도 물러섬이 없는 바벨론은 또다른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은 이미 강대국들 사이에서 녹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잊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약속의 민족 약속의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주변의 정세에 마음이 빼앗겨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전능자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모든 열방의 민족들 중 유일하게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던 약속입니다.

흙을 빚어 원하는 그릇을 만드는 주권은 토기장이에게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흙을 빚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정성껏 빚은 흙이 원하는 모양이 아닐 때는 터트려 버리거나 부셔 버릴 수 있습니다.
혹은 다시 주물러 다른 모양의 그릇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권한은 토기장이의 권한이며 흙의 권한이 될 수 없습니다.
흙의 입장에서 자신이 멋진 명품 도자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즐겨 사용하는 아름다운 그릇이 될지 가축의 밥그릇이 될지조차 흙의 주권이 될 수 없고 오직 토기장이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9절에 예수님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인류의 죄를 사하고 사망의 포로된 사람들을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하심이라” 로마서 14 : 9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이야기하실 때 자신이 죽어야 하리라는 말씀을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죽고 나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하리라 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잡히실 것과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하실 때 베드로가 충성된 말로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제자들이 생명을 다해 막을 것이라며 예수님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실 때 얼마나 든든한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 : 23
베드로의 충정어린 말을 강력하게 제지하십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그리고 그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충고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 즉 세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버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을 따라 세상에 보내진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정체성의 변질을 경계하시고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삶의 목적을 메시아로서의 목적에 조금도 흔들림 없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몸과 생각은 늘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고정되어지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경쟁구도의 사회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생의 욕구들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높은 벽과도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가지 공격들이 쉴세 없이 몰아쳐오기도 합니다.
도대체 누굴 의지해야 하며 어느 쪽에서 서야 할 지 분별하기도 어렵습니다.
혹시 이런 어려움이 여러분을 감싸고 있습니까?
지금 바울사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빚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자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삶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목적이요 본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돌아보고 자신을 찾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흔들림 없는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만이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유혹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지라도 단호하게 뿌리치고 전진해야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 : 8
예수님께서는 삶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 본을 따라 제자들과 바울이 본을 보였습니다.
제자들의 본을 따르던 믿음의 선배들의 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본이었습니다.
우리모두는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거나 입거나 행하는 것들을 통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빚으신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시시한 세상의 욕심에 매이지 않고 거룩하고 고상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아름다운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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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06 -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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