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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기억되는 성도 (데살로니가전서 1 : 2 - 10)
2018년 9월 2일 주일예배
데살로니가 전서 1 : 2 - 10 기억되는 성도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의 서신중에 가장 먼저 기록 되었을 것으로 보는 서신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중에 개척된 교회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주요도시들에서 전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당시만해도 로마전역에서 초대교회는 유대교의 한 부류처럼 인식되기도 했지만 보수적인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는 초대교인들을 구별지어 박해했습니다.
바울과 일행들은 빌리보에서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데살로니가로 왔지만 오래지 않아서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피해 떠나야만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들은 성도들이 굳게 세워질 겨를도 없이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나게 됩니다.
교회가 개척되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연약한 교회가 염려된 바울은 여러 번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했지만 매번대적하는 사람들로 인해 가지못하게 됩니다.
결국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파송하고 자신을 대신해서 사역하도록 했습니다.
이후에 디모데가 바울에게로 돌아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디모데가 가져온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가 가져온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은 대체적으로 기쁜소식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새로 생긴 교회요, 그들에 대한 핍박의 강도가 강력했지만 성도들 모두가 재림을 소망하며 신앙을 꿋꿋하게 지켜왔던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소문도 그리스도안에서 믿음과 사랑이 풍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은 성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기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일행들의 기억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전서 1 : 3 라고 했습니다.
복음안에 자녀를 낳은 부모와 같은 바울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기억이 있겠습니까?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등에서 자신들이 먼저 본이 되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였으며 그들의 삶을 본받아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성도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 하면 떠오르는 이러한 특징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성도가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데 지녀야 할 본질적인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란 이 땅에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능력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믿음의 역사”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에 의해서 일들을 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그가 무슨 일을 해왔는가 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가 행한 그 일을 통하여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그 동안의 행적이 그의 인격을 대변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됨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역사, 또는 믿음에서 비롯된 역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모든 역사는 믿음이 그 기초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교회들은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합니다.
교육이면 교육, 사회봉사면 사회봉사, 구제면 구제, 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습니까?
주일이 되면 교사로, 찬양대대원으로, 친교담당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일로 분주합니다.
주중에도 구역예배나 수요성경공부, 토요아침 기도회등 여러 모임이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은 성도들이 세상안에 거하지 않도록 매일 교회로 불러들입니다.
이민교회의 특성이나 베를린한인교회의 특성상 한국교회의 모임들 보다 자주 모이지는 않지만 가족이나 친척들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오래 함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가운데 삶또한 얼마나 분주합니까
매일 시간에 쫒기듯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교회에서의 삶과 세상가운데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모든 일에 기초요, 근본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교사로 섬기고, 믿음으로 찬양대로 헌신하며, 믿음으로 친교봉사 하며, 믿음으로 봉사하고 구제하며 섬기라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역사는 거짓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를 좀더 하나님 입장에서 말해보면 우리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들입니다.
누군가가 해야 하는 모든 일에 각각 자신의 은사에 따라 하나님께서 맡기셨습니다.
그 맡기신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그냥 해라가 아니고 최선을 다해서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달란트의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달란트를 맡은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대로 열매를 거두고 그 믿음대로 회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내가 일주일 내내 교회와 세상의 삶 속에서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지말입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이목이나 체면 또는 어설픈 이익에 자신을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이라는 믿음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 : 58
맞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우리의 모든 하는 일들에 믿음으로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랑의 수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랑에는 수고가 따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랑에는 수고로움이 따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수고로움은 결코 짐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엄청난 수로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인한 이 수고와 희생은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그 사람으로 낙심케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 그늘에 살 때 우리 대부분은 가정에서 별로 수고하는 일이 없습니다.
밥먹을 시간이 되면 식탁에 앉아서 먹기만 했습니다.
밥은 밥통에 반찬은 냉장고에 국은 냄비에 언제든지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벗어놓은 옷이며 양발들은 다시 옷장을 열면 깨끗하게 세탁되어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을 오거나 결혼을 하고 나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나의 손이 거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무슨 반찬에 뭘 해 먹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던 물건들도 몇 번을 사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서있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려왔던 것들이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제가 두 돌 무렵 큰 병이 들어 병원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날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해주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아 죽었습니다’ 하고 하얀 천을 덮었답니다.
슬퍼하며 울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더랍니다.
그래서 숨이 붙어있을 때 한번 안아보려고 꼭 끌어안으면 몸이 축 늘어져 다시 내려놓았답니다.
작은 움직임도 없어 할 때 쯤 또 울기 시작하면 또 끌어안았다가 몸이 쳐지면 다시 내려놓기를 한참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찌어찌 퇴원했는데 너무 야위어서 뼈만 앙상했습니다.
그런 저를 업고 긴 대나무를 들고 논으로 가서 개구리를 잡아서 먹이셨다고 합니다.
개구리를 잡아서 먹이는 날이면 꿈에 뱀이 그렇게 나타나 괴롭히셨다고 합니다.
섬에서 나고 자라셨지만 다 죽어가던 아들을 위해 만지지도 못하던 개구리를 잡아 먹이셨던 것입니다.
조그만한 어린 아이를 끌어안았다 내려놓기를 한나절이나 할 때, 생전 만지지도 못했던 개구리를 잡아서 해 먹이려고 할 때 얼마나 포기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으셨겠습니까?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큰 수고로움과 희생이 따르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을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관절이 약하고 걷는 것이 힘들어도 손자 손녀들을 하루 종일 업고 있게 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짐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사랑으로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먼저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 : 8 고 바울은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인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희생과 수고를 동반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러한 희생을 고통스러워하셨습니까?
짐으로 여기고 억지로 감당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자기 희생과 수고를 하셨고 그 일을 짐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쁘게 여기신 것입니다.
사랑은 희생과 수고를 요구하지만 그것은 결코 짐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짐으로 여긴다면 결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 일까요?
우리가 이 땅에서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을 믿음으로 굳건히 이겨내며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종말론적인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그것이 성취되는 그 순간까지 성도로 하여금 모든 삶을 감당해 낼 수 있게 하는 인내를 가져다 줍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소망에는 모든 어려움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입시에 떨어져 어찌할 바를 모를 지라도 장차 소망이 있는 학생은 실패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써도 소망이 있는 청년은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소망은 육신적인 소망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말합니다.
지금은 동족인 유대인의 핍박이나 로마의 통치아래 믿음을 가진다는 것조차도 어렵고, 예수를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고백도 마음껏 할 수 없지만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이모든 고난과 핍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망의 인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의 소망은 우리를 고난과 핍박으로부터 인내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편지 여기저기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이 세가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그러하고 사랑이 그러하고 소망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에대한 우리의 반응은 역사과 수고와 인내로 이를 완수해야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며 많은 역사들을 일으키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또한 사랑은 성도에게 지쳐 쓰러질 정도의 수고로움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를 짓누르는 짐이 아닙니다.
또한 소망은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때까지 이 땅에서의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생활 가운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꼭 실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가지 덕목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상을 덧입는 그곳까지 우리를 꿋꿋이 지탱하며 인도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 없이 기억되는 성도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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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02 -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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