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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짐을 서로 지라 (갈라디아서 5 : 25 - 6 : 10)
2018년 9월 9일 주일예배
갈라디아서 5 : 25 – 6 : 10 짐을 서로 지라

10여년전 필리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내해주시던 선교사님께서 마닐라의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설명해주셨습니다.
한참을 가던 선교사님께서 멈춰서더니 곧 쓰러져가는 건물을 가리키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주 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허름하고 언제 수리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습니다.
이곳 건물들의 주인들은 중국인 화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건물을 수리하거나 가구를 바꾸거나 하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거지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고 하지요
지저분한 옷을 매일 입고 험한 집에 살면서도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면 큰 집을 짓고 화려하게 꾸미고 살 거라고 늘 이야기 한답니다.
그들의 소망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다가 고향에 뭍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 하루 이와 같이 고향을 생각하며 살다 어느 날 죽게 되면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필리핀에 묘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공동묘지를 보여주시겠다며 마닐라의 가장 큰 빈민촌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판자가 규격이나 재료가 뒤섞여 한눈에 봐도 삶이 고단한 이들의 터전이었습니다.
보통 10크바 정도 되는 공간에 일가족 7,8명정도가 사는데 다닥다닥 이어 붙여놓은 탓에 몇 년에 한번씩 대형 화재로 큰 변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과 맞다은 훌륭한 건물이 인상적인 마을로 안내하셨습니다.
인접한 빈민촌과는 달리 너무나도 깨끗하고 잘 정돈된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전에 보았던 필리핀 빈민촌의 아이들만 보일 뿐 마을주민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곳은 공동묘지입니다.’
근검 절약하며 살던 화교들이기에 빈민들이 사는 값싼 땅을 구해 공동묘지로 이용하는 줄 알고 간 곳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실제 사람이 살 정도의 큰 집 한 채가 가족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리석과 견고한 석재 건물로 훌륭하게 지어놓은 집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은 자를 위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한 사람씩 있어서 매일 청소하고 관리한다고 합니다.
간혹 장례를 위해 오고 가는 화교들의 무리를 볼뿐 그 크고 아름다운 마을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매일 허름한 옷만 입고 허름한 집에 살다가 결국 평생 살지도 않을 화려한 공동묘지에 무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일반화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화교’하면 마닐라의 허름한 집과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이 떠오르며 빈민촌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뛰어 놀던 공동묘지가 생각납니다.
자신을 위해서 꽃 한 송이 사지 않는 사람들이 죽고 나면 시든 꽃이 없도록 가득 채워두고 관리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리게 될까요?
베를린 한인 교회 교인, 베를린 선한목자 교회 성도들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요?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잘 살았다고 소문이 날까요?
오늘 본문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답이 되시길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서두에 저 유명한 이신칭의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통해 우리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규명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열심히 지키며 순종함으로 얻은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하신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와 같은 이방인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유대인들처럼 유대적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말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유대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면 선택할수록 여러분들은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 아래로 떨어지게 되며 마치 노예나 여전히 저주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율법을 성취할 것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성령을 따라 사십시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따라 살면, 여러분은 참으로 율법의 권세에서 자유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고민 깊은 질문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바울은 성령에 의해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령에 의해 살고, 성령에 의해 행하는 삶이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삶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육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 : 24
정욕과 탐심의 사람 입니다.

인생의 비극은 어디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수많은 인생의 비극은 비교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과 다른 이가 가진 것을 비교합니다.
남의 떡은 항상 내 떡보다 커 보입니다.
남보다 더 특별하고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다른 이가 가진 것을 비교합니다.
비교함으로 얻어지는 것은 시기심과 질투와 탐욕입니다.
죄 아래 태어난 모든 사람은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육적인 사람의 정체입니다.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하고 먹어서 지혜로울 것 같은 정욕에 지배된 사람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주인인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살던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입어 생명을 얻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육체의 욕심에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스스로의 삶을 주도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육체의 욕심을 제어하고 율법의 요구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유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함에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요 율법을 완성시키며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사랑에 대해 깨달아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성도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면서 드러내야 할 성령의 법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특징하는 여러 기준중의 하나 혹은 특징이 아닙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성령의 은혜 아래 인도 되어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의 진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성령의 임재를 분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 : 25, 26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법인 사랑을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짐을 서로 지라’
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라디아서 6 : 1
바울은 범죄가 드런난 사람을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신령한 이들이 범죄한 형제들을 대하는 마땅한 방법은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마치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거나 부러진 뼈를 회복시키는 의사의 진료와 같이 섬세하게 회복시키는 일은 반드시 온유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동료가 유혹에 지고 말았을 때 우리가 취할 태도는 그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지하며 인내함으로 범죄한 지체들이 자신의 짐을 지는 것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음을 깨달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범죄하면 교만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특히 자신을 범죄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스스로 그들보다 낫다고 여길 때 이러한 죄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속으로는 기분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나는 너보다 더 거룩해’라고 생각에 머물게 된다면 교만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태도는 갈등하고 있는 성도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교만한 마음을 벗어버리고 오히려 죄의 틈이 생기지 않았는지 시험해보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 : 39 는 주님의 말씀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종말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님의 때를 소망하며 그 때가 오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 길을 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우리에게 마지막 권면의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아서 6 : 10
성령의 은혜로 생명을 얻은 성도들은 심판의 때까지 말씀을 따라 사랑으로 교회와 세상가운데 봉사하는 일에 성실해야합니다.
우리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각자 은사를 따라 주신 소명이 우리의 사랑의 섬김과 봉사로 증명되어집니다.
성도들의 선한 행실들은 이를 목격하고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믿음의 가정에 속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 : 34, 35
교회공동체는 이로써 하나가 되어집니다.
정치적인 관심이나 경제적인 이익, 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교회공동체를 하나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성령에 의한 사랑만이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세우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성령으로 살며, 성령에 인도되며, 성령과 동행하며, 성령으로 심는 신령한 자들이 심판의 때까지 삶의 증거로 나타내야 할 책임과 의무입니다.
이 말은 사랑으로 행하는 선행의 일들이나 봉사의 일들이 우리의 생각이나 의지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율법의 일들이나 육체의 일들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 행동을 통해 미래에 추수할 씨앗을 지속적으로 심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추수의 때를 피할 수 있는 인생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들고 주인 앞에 섰던 종들처럼 모두가 주님 앞에 서서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 : 7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비웃고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비웃음을 듣거나 업신여김을 받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기적의 수확은 없습니다.
심지 않았는데 거두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심지 않은 들판에는 잡초만 무성합니다.
내가 심은 씨앗이 다른 곡식이나 열매로 추수할 수도 없습니다.
양파씨앗을 뿌려두고 추수를 기다리는데 마늘 가격이 높아 졌다고 내가 뿌린 양파씨앗이 마늘이 되어 있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자신이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사람들에게 약속의 권면을 들려줍니다.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 : 9

우리를 보게 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분명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로서 성령의 사람이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고 성령에 의해 서로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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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09 -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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