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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하나님의 주권 (사도행전 12 : 1 - 11)
2018년 9월 16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12 : 1 – 11 하나님의 주권

신약성경에 보면 헤롯이라는 이름의 왕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 헤롯이라는 왕은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의 왕이지만 이름이 헤롯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에 유대의 유아들을 죽인 헤롯 대왕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왕비가 열명이었고 그사이에서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비와 마찬가지로 권력욕이 대단했습니다.
헤롯 대왕의 후계자는 네 번째 아내에게서 태어난 헤롯 아켈라오였는데 3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 다음 왕은 헤롯 안티파스인데 그가 바로 세례요한의 목을 벤 사람입니다.
안티파스의 뒤를 이은 왕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1세입니다.

아그립바는 정치적인 감각과 욕망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티파스가 유배를 간 사이 유대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까지 통치 할 수 있는 통치권을 로마황제로부터 받아낸사람입니다.
헤롯 일가의 가장 큰 약점이 있다면 그들의 혈통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을 다스리는 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의 분봉왕으로서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자신을 왕으로 세운 로마의 황제에게 최선을 다해 잘 보여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야만 오랫도록 왕으로, 통치자로 권력을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분봉왕으로서 로마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능력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다스리는 땅이 분쟁이 없고 조용해야 합니다.
식민지 였던 유대지역에 소요가 일어 로마황제의 심기를 거스린다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는일과 소요가 일지 않도록 도시가 안정되게 통치해 로마당국으로부터 자신의 정치력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기에 헤롯의 친 유대주의 정책은 권력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얼마전에 로마의 법으로 처형된 예수라는 사람의 추종자들이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활동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못마땅해 하던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력해지고 난폭해졌습니다.
유대지역이 하루가 멀다하고 소요가 일어나고 살인사건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헤롯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친 유대정책을 펴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함으로 공회의 종교와 정치를 주관하던 의회를 자기편으로 삼았습니다.
절대 다수가 되는 사람들의 환심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약점과도 같은 혈통의 문제등을 쉽게 가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하고 떠나 버린 이후 유대인들의 구심점이 약해져 있을 때 헤롯의 이와 같은 공격은 유대주의자들의 지지와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이 부분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어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로마의 법에 의한 처형은 참수형이나 십자가 형이었던 반면 유대의 처형은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야고보의 죽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처형이었음을 드러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가장 아끼시던 세명의 제자인 세베데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야고보는 제일 먼저 순교하게 되는 사도이며 요한은 승천하신 예수님을 본 사도중에 가장 마지막 까지 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사도의 죽음을 유일하게 기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의 순교는 매우 낯선 일이었습니다.
이전에 스데반의 죽음은 그가 유대적 배경이 아닌 헬라적 배경의 사람이었고 그의 불 같은 설교가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갈릴리가 고향인 어부출신의 순수한 유대인으로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헤롯에 의해 살해된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지도자중 한명인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자 군중들은 크게 환영하며 기뻐했습니다.

사울이 사라지면서 잠시 주춤했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를 죽이면서 많은 군중들의 환영에 우쭐해진 헤롯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잡아들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여러 번 산헤드린 공회와 마찰을 일으켜왔으며 예수를 전하는 이들의 지도자와 같은 핵심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번 살해만 성공하면 유대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는 이 일이 무교절일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7일간의 절기는 연중 가장 중요한 세 절기 중의 하나인 유월절과 함께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중요한 절기에 유대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수많은 유대인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권력의 욕심에 가득한 헤롯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통 죄수들은 이 중요한 절기에 사면을 받고 풀려나야 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며 이 절기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오히려 이 절기를 자신의 권력을 더 견고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헤롯은 절기 중에 살해하는 모험을 하지 않고 절기가 마치자 마자 살해라기 위해 베드로를 절기 기간에 가두었습니다.

유월절 절기가 마치자 마자 베드로를 살해할 의도가 있던 헤롯은 감옥에 가두고 병사들로 지키게 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계획이 방해 받지 않도록 군사 네 명이 한 조인 네 개의 조를 짜서 베드로를 지키게 했습니다.
이미 베드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감옥에서 풀려났던 사건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헤롯의 이와 같은 명령은 불필요한, 넘치는 감시였습니다.
어쩌면 헤롯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구해내지 않으실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권력욕에 눈이 먼 헤롯에게 베드로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얻게 될 정치적 유익은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재판과 처형이 있기 전날 밤 두 명의 간수 사이에서 곤한 잠에 들었습니다.
이미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을 지라도 그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 밤이 될지 모를 때에 난동을 피워 헤롯의 폭력을 정당화 시킬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넣어둔 무덤을 돌로 막고 로마인의 도장으로 봉인해놓고도 십자가 형장에 나타나지도 못했던 겁쟁이 제자들이 찾아올까 수많은 병사들로 지키게 했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아무리 악한 죄수라 할지라도 양 옆에 병사가 계속 지키게하고 첩첩이 군사들을 베치하겠습니까

다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잠자고 있는 베드로를 깨우셨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났을 때 그 손과 발에 채워졌던 쇠사슬이 벗어졌습니다.
주의 사자의 등장으로 옥중에 광채가 빛났지만 얼마나 곤히 잠이 들었는지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마치 꿈을 꾸는 듯 움직였습니다.
천사가 베드로를 재촉합니다.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베드로는 천사의 말을 따라 옷을 여미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천사가 이끄는데로 따라갔습니다.
베드로와 천사는 두 문과 두 파수를 지나 마침내 성으로 통하는 거대한 쇠문앞에 이르렀습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어의 automatic 의 유래가 되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베드로와 천사가 거대한 쇠로 된 문 앞에 서자 마치 쇼핑센터의 입구에 서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것처럼 저절로 열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록되어진 인물들 가운데 자동문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를 위한 이 특별한 일들은 거리에 나와 천사가 떠남으로 끝이 났습니다.

차가운 밤바람이 베드로를 깨웠는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베드로는 헤롯의 손과 유대이의 종교적인 박해로부터 구출되었습니다.
여전히 죄수의 신분인 베드로는 몸을 숨기며 자신의 안위를 알리기 위해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베드로의 구원을 위해 야고보가 사형에 처해지고 베드로가 잡혀갔을 때부터 쉬지 않고 기도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복음을 전하고 예수 안에 거하던 이들의 숫자가 작지 않았음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있었습니다.
야고보가 잡혀 사형을 당하고 베드로가 잡혀있을 때 이들은 세력을 모아 헤롯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간수를 매수하거나 산해드린 공회와 협상을 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있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복음전파의 중요한 원동력이 바로 기도라는 사실을 여러곳에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생활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전,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 전, 변화산에서 변화하기 전,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상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서는 성도들의 기도생활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유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성령께서 강림하시기 전, 일곱 집사를 세우기전, 베드로가 다비다를 일으키고 고넬료를 만나기 전, 바나바와 사울을 전도여행에 파송하기 전 등등 수많은 기도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필요 없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셨던 것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던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하나님과 계속해서 교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통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주어진 명령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성도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릴 때 믿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쇠사슬에 매였고 두 군사가 그의 양 옆을 지키고 있었고 또 다른 군사들의 문마다 보초를 서며 지키고 있었으니 도망을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순교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미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전력이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는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베드로를 위한 기도처럼 초대교회 성도들도 베드로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할 수 있도록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베드로는 무사히 초대교회 교인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안전하게 구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고 아끼시던 세 명의 제자 중 야고보는 왜 죽도록 두셨을까요?
야고보의 제자들이 유대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그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일까요?
아니면 다음 사역에 베드로의 역할이 더 중요했을까요?
형제였던 야고보는 가장먼저 순교하도록 하시고 동생 요한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추측해볼 수는 있지만 이 모든 일에 대한 정확한 답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일들을 수도 없이 경험합니다.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다 뜻하지 않는 죽음을 당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더 많은 일들을 하셔야 할 능력 있는 분들이 질병으로 혹은 사고로 죽는 경우를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습니까 하며 눈물짓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알려주신 것 이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기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사실 답도 없고 물어볼 가치 조차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시며 그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의 광대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일하십니다.
그 계획을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계획의 극히 미약한 하나의 먼지중의 먼지와도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판단하려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어려움을 만났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가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꿈을 꾸는 듯 멍하게 있을 테지만 띠를 띠는 것과 신을 신는 것, 겉옷을 입고 따라가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만난다면 믿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 안에 거하시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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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16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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