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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블레히목사
Subject   내 말에 거하라 (요한복음 8장 31-32절 )
2018년 10월 14일 주일설교

내 말에 거하라


요한복음 8장 31-32절
볼프강 블레히 목사

말 뒤에 겉에 드러나지 아니한 숨은 뜻이 없다고 생각하면 "빈말이야" (말 속에 뼈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다 믿고 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떻습니까?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을 믿고 신뢰하십니까 아니면 그저 빈말로 지나쳐 버리십니까?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진리", "진리를 알라", "자유롭게 하리라", "자유케 되리라"와 같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장 31-32)
어떻게 사람이 말 안에 거할 수 있나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에, 즉 주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길" 원하십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이 "거하다"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오늘 성경 본문뿐만 아니라, 요한복음과 요한이 기록한 신약성경의 그의 서신에 나오는 이 주제를 가지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한은 주님의 "내 말에 거하라"는 이 말씀을 여러 각도에서 비추어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반복하여 다양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이 말씀을 우리가 그저 지나쳐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꼭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나다 한번쯤은 누군가의 상처주는 악한 말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이성을 잃고 분을 참지 못하고 분개하며 하지 말아야 할 심한 말과 욕설을 퍼붓는, 황당한 일을 당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정말 가슴 아픕니다.
그런 말은 우리에게 뼈 아픈 상처를 남깁니다.
네. 그 말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로 남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그 응어리리가 우리를 사로잡아 우리는 그 상처받은 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마치 값진 금 덩어리나 되는 것처럼 꼭 붙잡고 놓칠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말이 우리를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그 말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악한 말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로 인해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염두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말을 걸어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을 피해 버립니다.
우리의 안면 근육도 평소와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말로 우리에게 말로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도 없고, 미소를 지으려 해도 지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악한 말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정말 아주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가 한 말이 실수로 한 말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되면 그의 사악한 말에 따라 무력하게 나는 행동을 통제 받게 됩니다.
더 이상 내 감정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를 움직일 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좀 더 정확이 말씀드리면,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악한 말이 나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속박에서 빠져 나올 수 유일한 길은 하나빡에 없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만이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바로 사랑과 용서입니다.
그렇게 되면 (악한 말을 했던) 상대방이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분노에서였든, 질투에서였든, 아니면 악의에서였든 그의 악한 말이 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 말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정적인 예와는 대조되는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선한 말, 즉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말씀에 대한 긍정적인 예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마음 속에 담고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요? (어떤 뜻으로 말씀하셨는 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은 참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먼저 주님의 말씀의 뜻을 사랑에 빠진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라는 표현을 독일어 "Ich glaube, bei mir hat's gefunkt!"라고 하는데 어떤 소녀와 처음으로 사귀기 시작했을 때 이 말을 듣고 저는 하늘을 날아 갈 것 같았습니다.
청소년 시절 어느 겨울이었는데요, 우리 고향에 아름다운 산이 있는 데 그 산 속, 눈내리는 숲 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입술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첫사랑이었습니다.
"Ich glaube, bei mir hat's gefunkt!"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저는 이 말에 사로잡혀 "뿅" 가서 황홀하게 하늘을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에 푹 빠져 거하게 된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다른 예를 하나 더 들면, 바로 칭찬입니다.
"너 그 일 정말 잘했어.
네 재능에 딱 맞고 네가 받은 은사인 것 같아.
짱이야!"

그러한 칭찬의 말은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그런 칭찬의 말은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칭찬은 우리 마음 속에 오래 남게 됩니다.
우리가 그 칭찬의 말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우리가 거할 수 있는 그러한 집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값진 말들이 영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능력을 잘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때론 칭찬이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도 주고, 숨겨진 은사를 찾을 수 있게도 해 줍니다.
그 은사를 허락하신 하나님, 바로 그 분을 찬양하는데 사용할 때 그 은사는 가장 빛납니다. 은사를 zum Lobe Gottes (하나님을 칭찬하는 일), 높이는 일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가 주의 말에 편안히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에 거하며 사는 것은 부동산 안에 사는 것과 같지 않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단어 뜻처럼 부동산은 "부동", 즉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바로 부동산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 즉 주의 말씀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mobil 즉 동적, 움직이는 것입니다.
함께 가기도 합니다.
가장 유동적인, 움직임이 강한 것이 바로 주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우리는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돌아 서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일방 통행 도로로 들어 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 때에도 우리는 굳건히 주님 말씀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다양한 여러 성경 말씀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 좋아하시는 성경 구절이 없으신 분은 찾으시게 되길 바랍니다.
옛날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을 좋아했습니다.
입교식 교육 때 이 구절을 암송했었습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직 찾지 못하신 분들 찾으실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집중해 읽게 되면 나를 향한 말씀을 찾으실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표시하고 손으로 옮겨 적어서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항상 가지고 다니세요.
죽을 때까지 그 말씀이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위로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에 거하라!"
아무도 그리고 아무것도 우리를 그 안에서 내쫗을 수 없고 아무도 그곳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자신이 거할 사랑과 위로의 말씀을 찾지 못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가 보통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말 자체가 어떤 면에서 우리 삶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역사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세 시대에 Staufer가 가문의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2세입니다. (1215-1250).
그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많은 교육을 받은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험 과학에 빠졌던 사람입니다.
궁중에서 난해한 실험 하나를 실시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실험을 통해 인간의 원시어가 무엇인지 밝혀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영향력 없이 인간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는 그 언어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어었습니다.
바벨 탑 사건 이후의 언어 혼란의 원인을 밝히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하는데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연구자들은 궁정에서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유럽과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 갓태어난 신생아 아이들을 황실로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갓난 아이들을 따로 따로 분리해서 수용했습니다.
완전히 고립시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거나 생필품을 가져다 줄 때 보모들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의사 소통은 몸짓으로만 했습니다.
어떤 말을 처음으로 스스로 하게 되는 지 밝혀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잔인한 실험은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아이들은 전혀 말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이 차례로 죽어 나갔습니다.
말을 가르치는 것만 제외하고는 아이들을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보았습니다. 육체적으로 살려 놓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헛된 일이었습니다.

이 비인간적인 실험의 결과가 성경의 깊은 진리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신명기 8:3)
실험의 결과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면 죽는다"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거할 곳, 안식처, 의지할 수 있는 처소가 되는 말씀을 듣는 자만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보통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말도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한데.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과 영접의 말씀은 그 역사하는 힘이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삶의 처음이요, 우리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하시는 주의 말씀은 한 사람 한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시고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보물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저 단순히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말씀은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좋은 처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처란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들어와 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그 말씀은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처소가 되었습니다.
주의 말씀 가운데 안전한 처소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데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최상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가장 값비싼 것을 항상 새롭게 거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복음 안에 우리가 안식하며 거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의 말, 주님의 말씀이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최고의 처소라는 것을 주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삶을 통해 깨땓게 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장 31-32)
이론을 놓고는 토론할 수 있지만, 체험은 토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체험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사랑과 진리의 주의 말씀을 통한 체험의 신앙.
또한 그는 우리가 주의 말씀을 통한 강한 체험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 안에 우리가 안전하게 거하길 원하십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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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0.14 - 19:23
LAST UPDATE: 2018.10.14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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