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보내기

이름검색
  IDPASS Auto 회원가입 비번찾기


HOME


교회소개
교회주소
안내 및 공지
행사모임일정


담임목사
주일설교
설교동영상
찬양동영상
중보기도실
신앙칼럼


부서장회의
부서별 자료실
온라인 의견수렴


성도/자녀소식
포토뉴스


찬양과 복음성가
동영상모음

영상찬양모음


릴레이성경쓰기
다국어성경
독일어성경
통역팀 자료실

미술반 자료실


교회홈피 사용안내



주일설교

471 148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정승안목사
Subject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라디아서 5 : 1 - 6)
2018년 10월 28일 주일예배
갈라디아서 5 : 1 –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여행의 정점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성지순례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성경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은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일입니다.
저 또한 처음 가버나움 회당 유적지를 방문 했을 때의 감동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외부 벽만 남아있는 회당벽면을 만지며 이쯤 어디를 만지며 지나가셨을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벅찬 감동입니다.

최근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성지순례처럼 각광받는 여행지가 루터와 칼빈등의 유적지인 종교개혁지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당시 로마카톨릭의 부정과 불의에 맞섰던 것을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후 교회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일로 기념합니다.
작년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뤘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5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종교개혁 이전의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개신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에 대해 쉽게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이 현재 한국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가 재물과 권력을 추구하는 세상과 동일한 가치와 목적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 같이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누구든지 자신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하여 성도 스스로가 말씀에 은혜를 누리며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도리와 신앙생활의 충분한 표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직자나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대 처럼 일반 성도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일이 오늘 날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성직자인 목사가 잘 연구해서 주일 예배에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불의와 악습에 저항하며 지켜온 종교개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는 더 이상 성경을 읽지 않음으로 무력화 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기만 한다고 해서 모든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의 적으로 해석하며 모든것에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하나님의 음성이 이끌었다고 주장하지만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위험한 시도가 되어집니다.
설령 깨닫고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삶의 자리에서 살아내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종교개혁이며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이름인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이 교회를 드나들다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거나 이단들의 유혹에 말려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면서도 세상의 가치에 마음이 흔들려 마귀의 유혹에 무너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이 이단 사설에 미혹 당하는 일은 갈라디아 교회들에서도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오직 주님만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준수해야만 한다고 가르치면서 그 필수적인 것으로 할례를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사이에서 할례를 받으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잘못된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율법 행위로 이방인들은 양심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하며 현재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이 양심적인 행위에 의해 구원받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만약 너희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 할례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따라 예수께서 오신 것도, 그의 대속도 헛된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단 한 계명만 어겨도 율법을 위반한 죄인이 되는 것이므로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을 온전하며 올바르게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조차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고자 하는 자들은 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구원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지 않으셨던 구약의 성경시대에도 성부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이 아닐 지라도 우상숭배하는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 마져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기생 라합과 그의 일행들이 그러했고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던 룻이 그러했습니다.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이방의 도시 전체가 구원을 받은 니느웨도 그러했습니다.

여리고성의 여관 주인이며 기생이었던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물론이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 자신의 집으로 피신한 이들 모두를 구해준 것은 지금껏 자신이 믿어왔던 거짓 신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라합은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수아 2 : 11 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12절에는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여호수아 2 : 12 라고 간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젊은 날 남편을 잃고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지만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로 내려온 룻은 그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기 1 : 16
니느웨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은 요나 3:5에 나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 3:5
이사야 선지자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라고 선포하며 죄 사함이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1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이전에도 예언자들 속에 영으로 내주 하여 장차 세상에 와서 대속의 고난과 부활 승천의 영광을 누릴 것을 미리 증거 하게 하셨다는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이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메시야를 통해 구원하시는 절대자이시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결단코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들로 확실히 알고 믿어 구원받도록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구원의 방도를 좇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약속의 자녀가 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이들에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구원의 소망인 종말의 신앙을 소유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갈라디아서 5 : 5
이미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이들이 장차 맞이하게 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4:7, 8 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 8 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삶의 현장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5 : 6
어떠한 종교 의식 준수도, 어떠한 인간적 선행도, 그 어떠한 인간적 노력도 완전한 의, 곧 최종적 구원을 얻는 데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고 오직 사랑으로써 행하는 믿음만이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4 라고 하시며 믿음에서 비롯되는 행위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라는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고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만이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쓸 필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기초가 되어 세상에 드러나는 사랑의 역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줄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의미는 잘못된 관행이나 관습과 불의에 대한 저항에 있습니다.
저항하는 자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준이 되어 모든 삶을 비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할례와 무할례를 구원의 증거로 삼으려고 했던 이들의 무지함은 성경을 읽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며 읽기는 읽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와 목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종교 개혁자들의 피는 성경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며 말씀대로 삶을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루터가 살아가던 당시 성경 한 권을 사려면 약 500 굴덴이 필요했다고합니다.
1굴덴은 당시 일반 노동자들의 2,3주의 품삯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교에 제직중이던 루터의 월급이 8굴덴이었습니다.
500 굴덴을 오늘날의 화패로 환산해보면 약 5억원 정도 했습니다.
대학교수인 루터도 일반 노동자도 라틴어로 필사된 성경을 사는건 절대로 쉽지 않았습니다.
루터의 오랜 친구이자 지지자이며 인쇄소를 운영했던 크라나흐는 성경을 인쇄하기 바빴습니다.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초판 3천부가 두 달 동안 순식간에 팔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루터의 성경은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였으며 그 가격도 1.5 굴덴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500 굴덴이던것이 많이 싸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반 노동자의 한달 월급을 줘야만 성경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5억하는 벤츠를 150만원에 파격할인해서 판매했다고 생각하면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루터가 1522년 9월에 초판을 내고 나서 100년 동안 85판이 출판되었습니다.
85판의 새로운 책을 인쇄 할 때 마나 끊임없이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전면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종교개혁은 사상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단지 비싼 성경을 싸게 팔았다는 것이 종교개혁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세상을 살아가려는 결단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가치와 인생의 욕심에 성경을 맞춰서 정당화 하고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소망을 갖고 믿음안에 사랑의 역사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되며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게 되는것입니다.
말씀을 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읽고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시대적인요구나 관습과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프린트출력을 위한 화면보기
DATE: 2018.10.28 - 12:05


 이전글 권세 앞에선 그리스도인 (로마서 13 : 1 - 7)
 다음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히브리서 13:1-2)
글남기기삭제하기수정하기답변달기전체 목록 보기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보기
471Simple view인생의 본질 (욥기 14 : 1 - 6)2018.11.11 3
470Simple view권세 앞에선 그리스도인 (로마서 13 : 1 - 7)2018.11.04 28
469현재 읽고 있는 글입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라디아서 5 : 1 - 6)2018.10.28 47
468Simple view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히브리서 13:1-2)2018.10.21 82
467Simple view내 말에 거하라 (요한복음 8장 31-32절 )2018.10.14 96
466Simple view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2018.10.07 118
465Simple view기억하고 지키라 (레위기 23 : 33 - 44)2018.09.30 147
464Simple view이방의 빛 (이사야 49 : 1 - 6)2018.09.23 174
463Simple view하나님의 주권 (사도행전 12 : 1 - 11)2018.09.16 190
462Simple view짐을 서로 지라 (갈라디아서 5 : 25 - 6 : 10)2018.09.09 216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삭제/복사/이동 하기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복사 체크된 항목 복사
현재페이지가 첫페이지 입니다. 다음페이지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끝페이지
글남기기 새로고침
이름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제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내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 메인화면으로 돌아가기

인터넷성경

(c) seit 2008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SEONHAN MOGZA Evangelische koreanische Gemeinde Berlin e.V., Bundesallee 76A, 12161 Berlin
Tel. (030) 8550-6368
Mobil: (0176) 6318-9090 
Postbank Kontonummer 470 401 07, BLZ 100 100 10
info@mogza.com

2018년 교회표어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

집회안내

주일예배:오후 3시
(주일학교: 13시 30분)
수요예배: 오후 5
토요기도회: 오전 7시

주요 사이트 바로가기

연중 행사계획표 
온라인 교우주소록
 
월별 생일자 명단

*** 동영상 다시보기 ***


파트너 독일교회

Zum Guten Hirten
Philippus-Nathanael

한글학교

독일어 세미나

베를린
유학/관광/생활정보
벼룩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