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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권세 앞에선 그리스도인 (로마서 13 : 1 - 7)
2018년 11월 4일 주일예배
로마서 13 : 1 - 7 권세 앞에선 그리스도인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최초 기록자로부터 길게는 3천5백여년부터 짧게는 2천여년정도의 시간적인 공백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지나는 동안 변화되어온 관습이나 문화의 공백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개념으로 읽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기록했을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고 읽게 된다면 무리한 오역이나 오해를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더 가까이 가려는 묵상이 성경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책을 읽으려고할 때 책을 쓴 작가가 옆에서 읽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미 성경의 기록자들은 2천년 이전에 모두 사망한 뒤이지만 성경의 원 작가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계십니다.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진 책이므로 하나님께서 지혜를주시고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읽어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성도들에게 어떤 말씀들은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안겨주곤합니다.
광야에서 받았던 율법의 말씀에 대해서 로마의 통치 아래 살고있던 유대인들에게 어떤 부분의 말씀들은 논란과 토론의 꺼리가 되곤 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바울의 권면은 수세기를 걸쳐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난제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정시대와 군주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등의 시대적, 문화적 가치와 세계관들의 변화속에서 변하지 않는 말씀을 오류없이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노예제도가 일상이었던 시대, 인종청소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여러시대의 집단 학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불합리한 정책들속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가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조차 이 문제는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공관 속에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로 세상과 격리되어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별은 하나님의 것과 세상과의 구별이며 우리는 세상가운데 거하지만 하나님의 소유가된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현실과 말씀 사이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이해하고 말씀이 이끄시는데로 살아가야합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삶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처음 읽게 되는 독자들은 로마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 기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이 모세오경에 기반을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복음을 인하여 모세오경을 비롯한 구약의 성경은 중요한 신앙의 세계관을 이루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7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있습니다.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신명기 17 : 15
이것은 특별한 명령입니다.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자는 항상 유대인이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형제가 아닌 자가 자기들을 다스리도록 하는 일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에게 정복 당했을 때, 그들은 멸망의 고통과 함께 율법을 어기는 범죄함 가운데 처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민족에 속한 통치자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통치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이 신명기의 말씀에 분명하게 계명을 어기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 당원들과 바리새인들이 서로 논쟁하다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마태복음 22:17
이 질문은 세금을 바칠 것인지를 묻지만 유대인이 아닌 통치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메시야의 개념은 매우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지도자로서의 메시야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몰아넣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분이 맞다면 당장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신이 왕됨을 선포하고 군중들을 끌어모아 로마의 군사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회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분이 수도인 예루살렘은 명절에만 들리고 갈릴리 주변을 맴돌며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도 초대교회 안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유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셨고 다시오시마 약속하시며 심판의 주인으로 오신다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다른 지상의 권위나 권세에 복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런 고민들은 메시야가 정치적이고 세상적이며 지상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권세를 행사하시는 분이라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민족, 유대인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시며 정치적이지도 군사적이지도 않은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의 회복을 선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은 작은 하나의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사도들의 글들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세상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국가와 환경을 무시해야한다는 것은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기만 하면 이세상과 관계를 끊어야 하고 국가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신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부르시는 날 주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혹은 그리스도인인 나는 세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세상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떠나서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 특별히 국가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 대해 어느 정도 까지 복종하며 그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혁명적인 일이나 개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할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이런 문제 앞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자신과 이러한 문제로 갈등을 겪는 지체들을 위해서 바울 사도의 의도를 분명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위협받으며 투쟁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분명한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국가의 역할이나 입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되는 그리스도인이 어떻해야 할지 말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권세들은 권위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권세들은 우리를 다스릴 위치에 있는 권위자들입니다.
우리 위에 세움 받은 어떤 존엄과 권위를 가진 자, 높이 있어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 지위에 있어서 우리보다 더 높은 사람은 누구라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선한 권세에만 복종하고 악한 권세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선하든 악하든 우리를 다스리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있습니다.

로마서 13장 4절 이후의 말씀들은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만약 우리가 권세를 거역한다면, 그 권세만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세우신 것을 거역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권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로운 것이라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그 권세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권세들에게 순종하면 그 권세들이 우리를 거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권세는 모든 면에서 모두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자들입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거스르기는 커녕 진실로 우리를 위하고 우리의 유익과 선을 위해 일합니다.
여기에 바울은 심판이 무서워서만 이 지상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영원한 뜻을 이루는데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권세에 대한 복종이 어떠해야 할지 한번 더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로마서 13 : 5
그리스도인의 복종은 심판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모든 민족을 들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조세와 관세를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권세가 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국가나 권세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의 노역과 세금을 통해 국민들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나 권세조차도 이를 잘 이행하지 않을 때는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계약들은 항상 존중되어야합니다.
이것이 말씀이 증거하는 절대적인 원리입니다.
그러나 만일 법이 기존의 계약들을 제거하고 더 나은 것으로 바꾸기를 시도하도록 허락한다면 이를 위해 기치를 들고 소리를 높일 충분한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국가나 왕이나 황제나 총독이나 어떤 독재자나 다른 어느 누구라도 폭군으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존재하게 되는 존재 이유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2절에 명시된 하나님의법을 파기하는것입니다.
악을 제지하고 선을 장려하는 것이 국가나 정부의 임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서 국가를 존재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그처럼 인류의 유익을 위해서 재정된 것이므로 상전 노릇을 하지 말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상전이 되고 폭군이 되는 순간 그 국가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법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권위와 권세가 스스로 세워진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어느 것 하나 설 수 없습니다.
권세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다스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자로 서는 것이며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그 권세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기 바울 사도의 글을 강력하게 대변하는 베드로의 글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전서 2 : 13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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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04 -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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