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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인생의 본질 (욥기 14 : 1 - 6)
2018년 11월 11일 주일예배
욥기 14 : 1 - 6 인생의 본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옹지마’는 중국 전한 시대의 책 ‘회남자’의 내용 중 ‘인간훈’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노인에게는 젊은 아들과 가족 같은 말 한 마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도망가자 사람들은 "말이 도망가서 어쩌나..." 하고 위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이게 복이 될 지 어찌 알겠소."라며 낙심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도망갔던 말이 많은 야생마들을 이끌고 노인에게로 돌아온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부자가 되셨습니다."라고 축하했지만 이 노인은 "이게 재앙이 될 지 어찌 알겠소."라며 기뻐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아들이 그 말들 가운데에서 좋은 말 하나를 골라 타고가다 그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쳤고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들이 다쳐서 저 지경이 되었으니 어쩌나..." 하고 걱정하며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게 복이 될 지 어찌 알겠소."라며 덤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얼마 뒤,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마을의 모든 남자들이 전쟁터로 끌려가서 대부분이 죽거나 혹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못쓰게 되었기에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비범한 노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중국의 고사에 등장하는 이야기 이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과연 화가 될지 복이 될지 알 수 없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방의 노인은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화와 고통보다는 복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주어진 환경조차도 이것이 화인지 복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물며 미래의 일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앞날을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다고 표현합니다.
약 30센티 정도의 길이를 ‘한 자’라고 하는데 여기서 ‘한 치’는 한자의 10분의 1 정도인 약 3 센티미터 입니다.
우리는 고작 눈앞에 3센티도 분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아이콘으로 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욥기를 읽다 보면 그의 친구들과의 대화에 이어 하나님께 향하는 신원에 이르기까지 불평과 원망의 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우리의 성정과 같은 인물이 욥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욥과 같이 부유함과 다복함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동 시대의 욥과 같이 큰 족장이 아닌 우리로서는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욥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욥의 인생은 복과 화가 너무도 극단적으로 변화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을 위로해주고 도와줘야 할 친구들조차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인 말로 욥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왜 이러한 어려움이 온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화해하며 자신의 처지가 회복되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친구들의 공격적인 질문과 조언에 대답하던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대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탄식하며 신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생을 ‘여인에게서 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은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생애가 짧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걱정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날들은 매우 짧은데 그 짧은 기간 동안 걱정거리들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 인생의 길이가 한뼘에 불과하고 너무도 짧아서 마치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시편 39편 5절
그런데다가 그 짧은 인생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인생들 보다 뛰어난 지혜와 부와 명예를 소유했던 솔로몬마저 평생이 괴로움과 슬픔푼이고 밤에도 편히 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2 : 23
시편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에도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이라도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며 신속하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편 10절.
욥은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으로 인생에 대해 한번 더 강조합니다.
인생은 꽃이나 그림자 같아서 쉽게 쇠하고 신속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마치 꽃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인양 피고 자라지만 순식간에 지고 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해가 떠서 그림자가 실체인 것 처럼 보이나 어느 순간 어둠이 찾아오고 그림자는 형체도 없이 빠르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고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이와 같은 욥의 탄식은 푸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탄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짧은 생애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인생의 괴로움에 대해서 불평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탄식은 인생이 이처럼 짧고 기쁨과 즐거움 보다는 괴로움과 걱정거리가 가득한 삶인데 그런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감시하시고 심문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연약한 인간에게서 죄를 찾기 위해서 감시하고 심문까지 하시는지 원망 가득한 소리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시하시고 심문하시는 대상인 욥 자신과, 모든 인생들은 짧은 수명과 넘치는 괴로움, 꽃 같은 연약함과 그림자같이 빨리 지나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감시하시며 심문하시는지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과 허물을 찾으시며 정죄하시기 위해서 주목하시며 이런 존재들을 눈여겨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주목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불러 심문하시기 까지 한다고 말합니다.
욥의 탄식은 자신과 같이 헛되고 무상한 존재를 그토록 심각한 눈으로 주시하시며 살피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하소연 하고 있습니다.
욥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을 감시하시고 심문하시는 것은 지나친데 그 이유가 유한하며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욥은 다른 이유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깨끗한 것을 낼 수 없는 더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자 또한 깨끗할 수 없다는 사실은 1절에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일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의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편5절
이처럼 이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에게서 깨끗한 것을 찾으시려는 하나님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이 땅 가운데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합니다.
욥의 문제 제기는 이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정결하거나 의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나마도 그 인생은 짧고도 빨리 지나가 버리며 고통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인생을 그냥 무시하시거나 버려두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불꽃 같은 눈으로 감시하고 불러 심문하셔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불만과 반항이 가득한 욥의 말들은 결국 욥 자신을 비롯해 모든 인생들에게 인간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들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날을 정하셨고 누구도 그 정하신 제한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정하신 제한을 넘어갈 수 없고, 그 짧고 신속히 지나가며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살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인간의 삶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이제 그 무서운 감시의 눈을 돌이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눈여겨 보심만으로도 유약한 인간은 숨쉬기 어렵기 때문에 감시의 시선을 거둬주시면 쉼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감시하시거나 죄악으로 인해 징계치 마시고 연약한 그를 놓아 자유케 하셔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주어진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오늘우리가 읽고 살펴보는 본문은 세 친구들의 권면과 추궁에 대한 답변이면서 하나님께 답답함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의 내용만으로 욥의 믿음과 삶의 자세를 규정할 수 는 없습니다.
대담하게도 하나님을 향해 속된말을 토해내는 욥의 탄원을 숨죽여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욥의 궁금증은 저나 여러분 혹은, 모든 인류의 궁금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함에 가슴 아파합니다.
또한 거룩하며 성결하게 살아야 함에도 원죄와 죄의 유혹에 흔들려 번번히 무너져 절망하곤 합니다.
이제는 좀 살만하게 도우셨으면 좋겠는데 긴 터널과 같은 인생의 고난과 걱정들은 끝을 가늠할 수 조차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는데 마치 내가 무슨 죄를 지어 그런건 아닌지 도통 알 수조차 없습니다.

풍족함에도 근신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던 욥에게 다가온 풍랑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앞에 죄를 지은 것을 찾을 수가 없는데 친구들의 걱정섞인 조언은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욥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인생들은 짧은 수명과 넘치는 괴로움, 꽃 같은 연약함과 그림자같이 빨리 지나가는 존재가 바로 자신임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죄로부터 출생한 거룩할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주어진 고통과 고민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쉼을 주시고 남겨진 시간 기쁨과 복을 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의 삶속에 고통과 고민과 죄의 굴레로부터 참된 해방은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연합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며 안식과 평안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안식과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음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거하는 자만이 참된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중 마주하게 되는 고통과 숨쉴 수 조차 없이 조여오는 고난가운데 놓여있습니까?
고난의 이유를 찾기보다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혜가 있어야 겠습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는 종종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합니다.
자국의 언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데 성공한 이후였지만 그의 우울증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자신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나는 일주일 이상을 죽음과 지옥의 문 가까이에 있었다. 나의 모든 사지가 떨렸다. 그리스도를 완전히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절망과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적인 감정으로 동요했다.”
루터가 이와 같이 영적, 심리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의 어느날 아침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기 위해 식탁으로 온 루터는 검은 상복을 입고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를 마주했습니다.
식탁에 앉으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죽었나요?”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는 루터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요즘 보이고 있는 태도를 보니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 같아서요”
루터는 지혜로운 아내로 인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생각해보면 의지가 강하고 신념을 위해 생명마져도 불사할 카리스마를 소유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순교를 선택하며 불의와 악에 맞섬에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또한 연약한 존재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욥도, 저와 여러분과 같은 모든 성도들도, 아무리 강한 성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지라도 여전히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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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11 -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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