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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새 하늘과 새 땅 (이사야 65 : 17 - 25)
2018년 11월 25일 주일예배
이사야 65 : 17 - 25 새 하늘과 새 땅

2019년이 되는 내년은 3•1 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3•1 운동 또는 3•1 만세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입니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장례식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입니다.
이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됩니다.
3•1독립선언서또는 기미독립선언서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하고 회동이 있던 태화관 앞에서 한용운이 낭독하며 그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 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만세운동은 약 3개월 가량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일어난 전국적인 봉기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3•1 운동은 현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기원이 되어진다고합니다.

국가를 이루는 중요한 세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국가를 이루려면 땅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독립적인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 요소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어지는 세계적인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 둘러 쌓여있는 팔레스타인들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하기 이전에는 나라로 불려지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땅에 살고 있으나 주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 목숨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애쓰고 수고해주신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자주 듣거나 보게 되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나라냐’는 문구입니다.
‘나라’ 즉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며,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일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처럼 다른 나라에 살고있는 이민자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국가가 경쟁력과 힘이 없을 때 타국에서 겪게되는 소외감과 차별은 더 깊어집니다.
일반 적인 상황에서는 국가의 존재 자체도 인식 하지 못하지만 재난의 상황이나 국가간의 소통의 때에는 더 도드러지게 체감하게 됩니다.
국가에게 있어서 국민이 없으면 국가의 존재의 이유가 사라져 버리며, 땅이 있고 국민이 존재하더라도 주권이없다면 국가로서 영향력을 갖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국가의 존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며 국가 또한 개개인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민족과 국가가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시대의 무대가 되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와 민족들에게는, 현실 가운데 드러난 세계와 보이지 않는 신들의 세계가 함께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미리 결정하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는 전쟁시에 자신들을 지키는 신의 형상들을 들고 나오며 전쟁에 승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신이 적국의 신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선택해야 하는 일들마저도 오직 신들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거대 왕국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지배자의 신격화 입니다.
왕의 명령은 곧 신의 명령이고 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끼쳐지는 영향력은 신적인 권위로 행해지고는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사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체적이거나 적극적일 수 없도록 했습니다.

성경시대의 인식들이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존의 세계이며, 사람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들에는 무한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람들이 생각 했던 것처럼 모든 일을 신들이 결정하고 신들에 의해서 세계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가운데 매 순간 선택하면서 살고 선택한 모든 일들에 영향력을 받는 존재들입니다.
개인의 역사뿐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역사속에 선택한 결정은 세상의 역사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있습니다.
현대와 같이 폭발적인 지식과 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판단의 중요함을 알아야합니다.
결코 누군가에 의해서 움직이거나 시대의 조류에 몸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때를 곧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행위의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영향력을 가지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사실 이 땅에 살면서 선택한 모든 결정과 행동이 모두가 의도한 효과를 경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루길 소망하며 행한 정의는 이세상에서 완전히 구현되지 못하곤 합니다.
우리가 선하다고 규정한 모든 것들이 상을 받거나 혹은 세상의 모든 악이 처벌을 받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을 행한 사람의 결말이 더 초라하거나 악을 행한 사람들의 결말이 더 행복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지난 주일 요한계시록을 통해 보았던 초대교회의 모습에서와 같이 사단은 우리의 환경과 여건들 속에서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없도록 공격해 옵니다.
사단의 공격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며 더 큰 파괴력으로 위협해 옵니다.
무슨 이유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우리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오는 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고난가운데 숨죽여 신음하기도합니다.
욥의 고백과 같이 침을 삼기는 동안에도 고난과 고통이 밀려만 오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하늘을 보며 하나님을 향해 눈물짓고 신음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백성이며 약속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약속하신 분은 변하지 않으시는 성품과 모든 것을 아시며 할 수없는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포로의 신분이 되었으며 강제로 끌려가거나 흩어져 이민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하나님을 더 이상 마음껏 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과 신앙까지도 빼앗기고 세상에 버려진 듯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 : 17
이스라엘의 하늘과 이스라엘의 땅은 파괴와 멸망으로 무너져있었습니다.
그들의 터전이 되었던 땅은 전쟁의 패해가 가득한 돌무더기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던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어 무너져 있었습니다.
황냥한 고향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에는 없었던 땅입니다.
과연 어떤 존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알 수 조차 없는 어떤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존하는 하늘과 땅을 누가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스스로가 대답하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기존의 하늘과 기존의 땅을 창조하신분이시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껏 신음하며 원망의 탄원을 드리던 바로 그분 이십니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며 찾던 분이십니다.
나를 아시고 내 모든 상황과 환경을 모두 아신다고 하시던 바로 그 분이십니다.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잊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며 새 예루살렘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곳마다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토록 가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을 기쁨의 성으로 삼고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무너져 버리고 폐허가 되어버리 예루살렘 성과 거룩한 성전이 이전의 모습이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도록 전혀 새로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창조하시고 예비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을 바치게 하셨던 곳, 언약궤가 머물렀던 타작마당,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졌던 곳을 예비하시고 인도 하셨던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셨던것입니다.
이 모든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과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게될 성전을 다시 창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더 이상 울음소리와 탄식소리가 가득한 곳이아니라 기뻐하며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그곳에는 생을 다하지 못하는 죽는일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생사여탈을 손에 쥐고 있는 듯했던 이방의 왕들과 군사들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갑자기 해를 입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이상 위협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신의 집을 건축하고 그 집에서 머물 수 있는 것, 자신이 수고하여 심어놓은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것이라고말씀합니다.
지금껏 인생의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다했지만 그들의 수고는 다른이들의 것이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집을 건축하지만 그곳에 살게 된 사람들은 바벨론 사람들이었으며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서 풍년을 맞이해도 그 수고로움의 열매는 모두가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수고한 것을 내가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것 같은 일이 그동안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에게는 너무나도 와 닿는 이야기일것입니다.
일재 강점기에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겨두었던 이야기들, 전쟁 물자를 겉어들인다고 금속으로 된 살림살이들을 모두 빼앗겨야만 했습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고사하고 신체적은 구속과 정신적인 구속마저 당해야 했습니다.
기후와 여건이 좋아 풍년이 들어도 전쟁이 나면 그 모든 곡식은 농부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의 글에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평강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의와 평강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ㅏㄷ.

이제 이 모든 말씀보다 마음을 더 뜨겁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사야 65장 24절 입니다.
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지금껏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살라주시라고, 도와 달라고 기도해왔습니다.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혹시 영원히 우리에게서 떠나셨는지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기도 전에 대답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는 처음 독자들,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설들에게 오늘의 말씀은 소망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백성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나라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정의가 하수와 같이 흐르는 나라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분이 바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역사하시며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마주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되찾으려 소중한 모든 것을 다 내놓았던 이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려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그 어떤 소망의 약속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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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25 -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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