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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님(마태복음 2 : 13 - 23)
2018년 12월 30일 주일예배
마태복음 2 : 13 - 23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님

예전에 제가 살던 곳은 도시에서도 조금 외곽에 위치한 동네였습니다.
동네의 골목길을 조금 가다 보면 항상 문이 열려있는 집이 있습니다.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현관 밖 까지 벗어놓은 신발들로 한가득이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모 대학 철학과에서 주역을 공부해 점을 봐주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항상 이맘때 쯤 되면 새로운 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해 하며 점을 보는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습니다.
한 동네 사람으로 몇 년간 지켜보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점을 보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매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돈을 얼마나 벌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알려주며 조심할것과 피해야 할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가끔 팔이나 발에 깁스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가고 몇 십년을 다 쓰러져가는 같은 집에서 살며 일년에 한 두 번은 다치거나 사고로 입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자신들에게 닥치는 위험을 감지해야만 비로소 두려워하기도 하며 위협에 대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눈앞에 다가온 위험뿐만 아니라 현실로 드러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로도 미리 겁을 먹고 불안해 하며 두려워 합니다.
이 불안함과 두려움은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이 불안함과 두려움을 이겨내려 각가지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살펴 별을 보거나 계절의 변화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예언자의 말이 반드시 이루어 질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이 지구의 종말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7월에 지구가 멸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7년 이르게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에 서, ‘다’와 ‘미’를 딴 ‘다미선교회’에서 지구의 종말이 닥치며 믿는 자들은 하늘로 들림을 받는 ‘휴거’를 경험하게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12시에 아무도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구의 종말이 닥치지도 않았고 벌써 25년이 넘도록 세상은 여전히 온갖 사건과 사고를 남기며 유지하고 있습니다.

온갖 예언자로 자처하며 예언을 하지만 이루어지면 자신의 예언이 정확하다고 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입니다.
사람은 동물들과 달리 예측하며 준비하는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예측이 언제나 맞는다면 요즘 일어나는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를 모두 예비하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조물이 갖는 한계인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라고 한다면 과거의 일이나 미래의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있을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미래를 예언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계가 없으신 분께서 초월하시는 영감으로 쓴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사한 어떤 경전이나 어떤 예언서와 같이 두루뭉실하게 아니면 말고 식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인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문제는 성경을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성경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들레헴과 인근에 태어난 수많은 사내 아이들이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죽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밤에 급히 베들레헴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 후 헤롯의 군사들이 들이닥쳐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예수를 죽이기 위해 오고 있으니 급히 애굽으로 피하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헤롯의 군사들에 의해서 아기 예수 또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준 황금과 몰약과 유향은 소중한 도피자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기록한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도피가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임을 설명합니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2 : 14,15
마태는 아기 예수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급박하게 이루어진 이 일들이 질서 없이 혼란하기만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모든 사건이 악한 존재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은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미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씀은 호세아 11장 1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그곳에 머물러 살고 싶어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불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상과 구별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불러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하신 진짜 아들을 애굽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시기 위해서 애굽으로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와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 그리고 요셉은 자신들이 떠나온 곳의 상황을 미쳐 자세히 알지도 못한채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애굽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가운데 어떤 상황과 환경이 우리를 해하려는지 모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악한 세력들의 유혹과 위협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게 하십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가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베들레헴과 인근에 살던 많은 아기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바람에 죽게 되었습니다.
마태는 이 또한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합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복음 2 : 17, 18
야곱에게는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이 있었습니다.
그 중 라헬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냐민을 낳다 죽게되어 베들레헴 가까운 곳에 장사되었습니다.
예례미야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무덤에 묻힌 라헬이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며 자식을 위해 애곡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순종하지 않고 세상을 쫒아 살다 결국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라헬의 무덤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래전에 죽은 라헬이 그들이 멸망을 당하고 끌려가는 것을 보고 애통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마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라헬의 통곡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베들레헴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게 됨으로 다시 라헬이 통곡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에 의해 해석되어진 예례미야 선지자의 예언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죄가 존재하며 악한 세력이 있는 이상 라헬은 또 다시 통곡할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편하게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죄가 존재하고 악한 세력이 활개를 치며 우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집어삼키려고하는 이상, 복음의 확신 없이 편안하게 아기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라헬은 모두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라헬은 누구입니까?
예수 없이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오셨지만 그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아이만 잘 키우면 행복하게 살 줄 압니다.
이들은 자녀들의 신앙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공부 잘하고 돈만 잘 벌고 자기들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살면 되는 줄 알지만 결국 통곡하게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들은 결코 자기손에 쥐어진 사람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길 때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을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자들의 큰 무리가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 28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없음을 인해서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의 권세가 불일 듯 일어나 유혹하며 위협함을 인하여 통곡하며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안에 거하지 못함을 인해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합니다.

헤롯이 죽기까지 애굽에 머무르던 요셉의 가족들은 주의 사자의 인도함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 : 22, 23
요셉과 그의 가족들은 이스라엘 땅을 들어왔지만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작고 좁은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고 자란 요셉이 돌아온다면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모든 아이들이 죽었을 때 피신했던 아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금새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전한 곳으로 요셉의 가족들을 이끄셨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가족들은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하게 되며 이후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마태는 이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왜 메시아가 베들레헴 사람이 아니고 나사렛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갖고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먼저 믿고 난 후에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는데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 : 46 라고 무시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예언에 메시야로 오시는 분은 그 근본이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시지만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핍박을 받으며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히려 선지자들의 예언이 잘못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언서를 읽던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시는, 메시야로 오시는 분이, 거룩하고 존귀하게 오시지 않고 비참한 모습으로 오셔야 하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폭력을 당하심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상처는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죄가 도무지 없으신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져 평화를 누리게 되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찢겨지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 아니라 베들레헴 사람으로 알려졌더라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때리거나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 예수로 알려졌기 때문에 마음껏 욕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을 무력하게 하셨고 예언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셨지만 나사렛 사람으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던 뛰어난 학자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고 오히려 악한세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 : 25 - 27
감사한 것은 이 모든 되어진 일들에 대해 지금은 너무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은혜의 시대에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려고 할 때마다 마귀는 세상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축복의 자녀들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무조건 믿고 따라가면 하나님은 동방박사를 통해서 필요한 것을 주기도 하시고, 위험에서 피하게도 하시고, 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와서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셔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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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2.30 -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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