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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부끄럽지 않은 삶(빌립보서 1 : 19 - 21)
2019년 1월 6일 주일예배
빌립보서 1 : 19 - 21

우리 몸의 공식적인 명칭중에는 바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이 세 군데가 있습니다.
손바닥, 발바닥, 혓바닥
그런데 제가 자라던 전라도에서는 세 곳 외에 한곳을 더 말하곤 했습니다.
‘낯 바닥’입니다.
본래 ‘낯’이라는 단어는 눈, 코, 입이 있는 얼굴의 바닥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낯 바닥’이라고 하는 말은 조금 어색한 말이기도 합니다.
전라도에서는 얼굴에 뭔가를 뭍히고 있으면 어김없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는 낯바닥에 뭘 묻히고 다니냐’

사람들은 뻔뻔한 사람들을 보고 ‘낯이 두꺼운 사람이다’고 합니다.
스스로 창피할 때는 ‘낯이 뜨겁다’고 합니다.
매우 부끄러운 상황을 표현할 때도 ‘낯을 못 들겠다’고 말하며 부끄러워합니다.
이처럼 얼굴의 바닥을 표현하는 낯이라는 단어가 지난 한해 많은 뉴스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정치의 민 낯, 경제의 민 낯, 스포츠계의 민 낯, 교육계의 민 낯, 종교계의 민 낯, 연예계의 민 낯, 법조계의 민 낯,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부끄러운 민 낯 등이 한해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이런 소식들을 들을 때 마다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습니다.
물론 지난 한해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운 소식들도 가득했습니다.
전세계가 함께 열광하는 B.T.S, 방탄소년단의 선전과 휴전중이던 한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에 합의하는 일이 있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기도 했으며 때론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2018년은 어떠셨습니까?
크고 작은 사회의 변화 속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에게와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부끄럼 없는 삶을 살자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든지, 혹 죽든지, 그리스도를 위해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자신의 사는것과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나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는 일에 큰 이변이나 지장이 있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는다고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거나, 자신이 살아서 뭔가를 한다고해서 큰 이변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전지 전능하심으로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울은 현재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생명이 연장되든지 아니면 곧 끝나든지 그것이 바울 사도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소망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항상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 그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립보서 1 : 20
뿐만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를 높이되, 그것이 생각이나 말만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몸에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잘 높이기 위해서는 몸으로, 즉 나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야지 생각이나 말만 가지고는 부족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말도 행함이 전혀 뒤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 : 26고 했습니다.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 21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바울의 인생관이 이 짧은 한 문장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영국의 마이어목사는(F. B. Meyer)
“상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부요함이요, 노예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노동과 고통이요, 철학자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지식이요, 군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명예요, 황제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제국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뿐이었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분토같이 던져버린 바울에게, 예수님은 삶의 이유이며 목적이었습니다.
지금껏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아왔습니까?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사랑하고, 바라고, 순종하고, 전파하고,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 만이 그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위한 것일 때,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불안의 대상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그리스도를 잃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얻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그에게 고난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의 날이요, 영광스러운 면류관의 날이요, 꿈에도 그리도 주님을 마주하게 되어 영원토록 함께하는 순간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를 살게하는 것, 나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위해서 이 땅의 삶에 대해 부끄럽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아닙니다.
순간적인 유혹에도 넘어가버리고 작은 고난에도 절망하며 낙심하곤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바울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바울처럼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온전하며, 담대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어떻게 그 모진 유혹과 핍박과 위협들을 견디며 믿음의 본이 되었을까요?

바울의 말에 귀를 귀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빌립보서 1 : 19
바울은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된 이유가 두 가지였음을 고백합니다.
먼저는 ‘너희의 간구’, 즉 성도들의 기도였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기도를 높이 평가했읍니다.
그는 사도였으나 빌립보 공동체의 기도와 사랑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루디아와 그녀 가정의 기도를 소중히 생각했고, 간수와 그의 가족의 기도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리고 글레멘드와 그 이외의 사람들이 기도해주기를 바랬읍니다.
그들 대부분은 세상적으로 높지도, 특별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간구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빌립보 교인들이 여러번 공급해 주었음에 감사했을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욱 그들의 기도를 고맙게 여겼습니다.

사실 빌립보 공동체의 지체들이 평안하거나 안락한 삶 가운데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유혹과 사단의 위협가운데 놓여있었으며 생존의 문재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시대가 초대교회의 때와 같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과 공격은 초대교회의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며 오히려 지금이 더욱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안에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향해 심각한 피해를 주며 위협을 가하는 사단의 공격이 더욱 날카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손의 무기가 강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무기가 더욱 강해지도록 하는 기도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빌립보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사역자들을 살리며 사단의 위협아래 있는 성도들을 세우게 될것입니다.
사실상 어느 누구도 다른 성도의 기도 없이 승리의 삶 을살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을 저를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우리의 교회는 다른 연약한 곳을 향해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이 땅에서 거룩한 삶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 모두는 기도의 동역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기도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도우심’이란 단어는 힘줄이 몸을 지탱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바울 당시의 도우심이란 남편이 아내를 보살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흔히 쓰는 단어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를 위해 하시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은 바울 사도로 하여금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사는 삶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매 순간 인도되지 않으면 결단코 부끄럼 없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통치하심을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성도들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한 삶으로 성령의 열매들을 가득 맺을 것입니다.
육신의 인도를 받으면 육신의 열매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대와 소망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나 연약함에 방해 받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허락한 구원과 은혜와 복음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바울은 성도들 또한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서로의 기도가 필요하며 성령님의 충만하신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2019년 우리교회의 표어는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니’입니다.
생각만으로 상상만으로 내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이 땅 베를린에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어지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즐거워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주시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하여 우리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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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1.06 -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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