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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산 소망 (베드로전서 1 : 3 - 9)
2019년 4월 24일 주일예배
베드로전서 1 : 3 – 9 산 소망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의회의 최고의원 중 한명인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 율법을 지키는데 가장 엄격하고 경건에 힘쓰던 신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부활과 영생을 믿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곳곳에서는 나사렛 사람 예수의 소문으로 가득했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 곳마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이 드러나며 그동안의 행적과 표적들은 그 기원이 하나님이 아니시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지금껏 연구하던 성경의 약속들이 과연 예수를 가르키는 것인지, 모두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인지 조심스러운 의심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얼마전까지 자신이 메시아라며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로 끝나는 사건이 있던 터라 쉽게 믿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용감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켜보고 고민해왔던 일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밤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나섰습니다.
 니고데모는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 : 3)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운 존재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 영생을 맛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궁금증을 해결할 줄 알았던 니고데모는 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거듭남,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데 한번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 3:8)
이 말씀은 바람이 부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조절 할 수 도 없는 것이며 그 기원 또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선택하시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일 또한 사람의 권한이나 사람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사역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기이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성경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과 이해력을 갖고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도무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부활과 영생의 비밀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습니다.
 죽음의 공포가 온 땅을 덮었을 때 모세가 들었던 불뱀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죽지 않고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메시야도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수 있도록 들리게 될 것이고 이를 믿어 메시야를 쳐다보는 사람만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 : 16,17
메시아의 오심과 거듭남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독생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 마다 구원하시며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메시아이시며 심판자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5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인 메시야에게 인도하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그앞에 갈자가 없을 것이며 메시야 앞에 인도되어진 자마다 쫒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셔야만 메시야를 믿고 따르게 되며 진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아마도 어두운 밤 나누었던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확실한 믿음을 얻은것같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병사를 보내 예수를 잡으려 할 때 예수를 위해 변론하기도 하고 골고다 언덕에서 아리마데 요셉의 요청으로 예수의 시체를 데려갈 수 있게 되자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서 장례를 함께 치르기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편지는 네로가 로마의 황제로서 초대교회를 본격적으로 박해할 때 심각한 박해와 핍박중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쓴것입니다.
베드로와 초대교인들이 편지를 주고 받던 시기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처럼 어두움이 가득한것만 같은 시기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이들을 세상은 적으로 규정하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양한 공격들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관습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모욕과 가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장차 당하게 될 고난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전방위적인 괴롭힘은 성도들의 삶과 생활을 힘겹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순간이 오면 나를 아프게 하고 힘겹게 하는 고난에 집중하게됩니다.
고통스러운 순간 모든 신경이 그 고통에 집중되어 버리고 나면 마음의 여유나 주위를 살펴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런 중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베드로의 편지는 소망이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셨던 예수님의 거듭남이 가려진 약속이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에 일어난 사건이되었습니다.
십자자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심은 그 죽으심의 의미와 부활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교훈하신 것이며 그동안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소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 이후 임마누엘, 영원토록 동행하시는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실것과 재림을 약속하시며 많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1 : 3,4

하나님께서는 높이 들린 메시야를 믿는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어진 거듭난 성도에게 산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죽은 것은 움직이지도 소망을 품을 수도 없으나 살아있는 것은 자라고 커가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근거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주어진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장차 올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소망입니다.
거듭난 성도,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가족이 된 성도들은 기업을 얻습니다.
이 기업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소멸하거나 전쟁으로 파괴되는 세상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존하시는 하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구원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삶의 자리에서 구원의 소망을 이루고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이 나타나게 될 마지막 때까지 소망을 품고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방해하고 소망의 기쁨을 무너뜨리려는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격은 초대교회에 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안고 기쁨 안에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닥치는 환란이며 고난입니다.
그러나 이 시련은 결코 교회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련은 불로 연단하는 것 같아서 성도들을 더 정결하고 순결하게 성화시키게 될것입니다.
고난을 이겨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하시고 부활하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천년 전의 사건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가요?
예수님께서도 패역한 세대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3 : 11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한것도 믿지 못하는데 볼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가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로마로부터 민족을 해방케하고 나라가 세워질 때 큰 관직에 앉기를 원했던 제자들은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놀라서 도망가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했습니다.
자신을 알아본 여종에게 세번이나 거짓말을 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그 많던 제자들과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며 연호하던 군중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비겁하게 군중들의 틈에 끼어 혹시 잡혀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골고다언덕에서의 십자가 처형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은 연약한 여인들과 극 소수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간 사람도 그 시체를 장례를 치른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자기들의 고향으로 흩어져 도망가고 문을 잠그고 숨어버렸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에 대한 소망이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 숨지 않게 되었습니다.
담대해졌고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죽었습니다.
부활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사형에 처형된 범죄자와 그를 동조하는 제자들이 감히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반역의 죄명으로 죽은 스승을 변론하며 거리에 떠들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신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위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지도 않게 되었고 오히려 다니는 모든 곳에 부활을 선포하고 있는것입니다.
만약 예수의 시신이 발견되고 부활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그들의 선포는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예수의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사건을 예루살렘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환상을 보거나 커다란 충격에 정신이 이상해 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또한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수백명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며 엄격히 지키는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어 하나님께 예배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안식 후 삼 일만인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천년이 넘도록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된 것은 주일이 바로 거듭나 영생을 얻은 날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부활의 아침 시작된 사건으로 세상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된 삶이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됨을 전하는데 목숨을 걸었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고린도전서 15:14,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19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생명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 자신의 변화된 삶으로 부활을 증거했던 베드로가 말합니다.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 : 8,9)

고난이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습니까?
그 고난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삶의 평안입니까?
성도의 고난은 메시아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삶이 원인이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고난이라고 부르십니까?
무엇을 환란이라고 부르십니까?
고난의 날 고난에 집중하지 마시고 고난의 원인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되신 성도여러분
성령의 역사하심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이 우리를 통해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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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4.28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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