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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나는 선한 목자라 (요한복음 10 : 11 - 18)
2019년 5월 5일 어린이주일 예배
요한복음 10 : 11 - 18 나는 선한 목자라

지난주 독일 인터넷 신문 tagesschau에 독일 교회의 전망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앞으로 2035년까지 22%의 교인수가 줄어들 것이고 2060년에는 49%가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25세에서 40세까지의 연령층이 주로 교회를 떠날 것이고 45세에서 60세도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나 교인들은 교회를 실제 출석하는 인구가 아니라 종교세를 내는 인구를 말합니다.
종교세를 내지 않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연구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종교세 조차 내지 않는 인구, 교회를 떠나는 인구가 급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세가 독일내의 교회를 운영하는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에 중요한 연구이며 해결방안등을 모색하는 듯합니다.
기사말미에는 어떠한 이유든지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목회적 책임을 갖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떠듬떠듬 기사를 읽으며 독일 기독교 사회의 고민을 보게 되고 마찬가지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의 교회에도 청년들이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과 세계선교의 중요한 축을 감당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주일학교의 활성화였습니다.
교회학교에서는 세상에서 맞보지 못한 즐거움과 기쁨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이라도 교회를 가본 경험이 성장한 이후 다시 교회로 인도되어지는 큰 요인이라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교회마다 어린 아이들로 가득했으며 아이들을 통해 그 부모들 또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에 어린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어른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고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투자하지 않으면서 어른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교회 안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신앙이 없는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복음의 소망보다는 삶의 소망에 집중하며 교회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인구의 감소가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라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치지 않고 있음이 원인입니다.
신명기에는 모세의 설교 세편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설교를 마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과 다음세대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할 것을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다음세대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무너지고 멸망할 것임을 경고했고 과연 이스라엘은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들인지 기억해야합니다.
교회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지켜 행하게 해야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땅의 많은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해야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 가운데 복음의 소망을 갖도록 해야합니다.
이러한 결의와 결단은 어린이주일과 같은 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베를린 선한목자교회의 중요한 비젼이 다음세대를 세우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데 있다는 것을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청년들을 통해 드러나길 바랍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나는 무엇이다’라는 표현을 일곱번 언급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한복음 6 : 2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복음 8 : 12)
“나는 양의 문이다”(요한복음 10 : 7)
“나는 선한 목자다”(요한복음 10 : 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1 : 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 : 6)
“나는 참 포도나무다”( 요한복음 15:1-2)

그 중 오늘 본문에는 양의 문이 되시며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가적인 예수님의 선언은 시편 23편의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더불어, 양과 목자에 대한 이야기의 오래된 기원은 에스겔34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4장의 내용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기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 목자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메시야의 예표인 다윗을 참 목자라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목자와 양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에스겔서를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목자이신지, 다윗이 메시아인지, 아니면 메시아가 목자이신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자와 양의 하나님의 되신다는 말씀은 더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말입니다.
에스겔은 미래를 예언했고 요한복음 10장에서 비로소 예수님의 선언을 통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시는 부분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다운 목자이십니다.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동시에 양떼의 목자이십니다.
이것은 오직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미가 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유대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시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수전절을 배경으로 하고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선한 목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가르치시고 유대인들에게는 백성들의 참다운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원래 에스겔 34장은 수전절에 유대인들이 읽는 표준 낭독 본문 중 하나였습니다.
수전절은 빛의 축제인 하누카라고도 불리는 절기로 파괴된 성전의 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전절을 배경으로 말씀하실 때 과거 그들의 지도자들로 인해서 매일 드리던 제사가 금지되고 우상이 성전에 세워지며 성전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무너졌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양떼라 부르고 하나님께서는 백성된 양떼의 목자가 되심은 언약의 주된 표현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도록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과 제사장들을 백성들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34장에서 정죄했던 것 같이 그들은 자신의 본래 목적과 사명을 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양떼들을 속이고 노략질하고 그들의 것을 도둑질 한 자들이 되고 맙니다.
양들을 잘 먹이고 보호해야 할 목자들이 오히려 그들을 잡아먹고 가죽을 벗겨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양의 우리를 무너뜨리고 양떼들을 온 땅에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참 목자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포로 생활 중에라도 자신의 양떼를 돌봐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과 같은 왕이 세상에 나타나 목자로서 흩어진 양떼를 모으시고 그들을 친히 먹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이 이제 성취되었습니다.
이 예언의 성취로 오신 메시야, 참된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9장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눈을 뜨게 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걸인을 출교시킨 일이 있은 후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백성들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이 그 불쌍한 지경에서 구원받음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그들의 강요에도 예수를 배척하지 않음을 인해 회당에서 쫒아내며 출교시켜 버렸습니다.
단편적인 사건이지만 그들이 어떤 종류의 목자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삯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들은 목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목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목자는 자신의 양을 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의 가족들을 압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족을 아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가족을 아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남편을 잘 알고 여러분의 아내를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함께 사는 부부는 그의 성격과 기질, 식성과 잠버릇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다 압니다.
모르는 구석이 없습니다.
피차가 그렇게 압니다.
그때 비로소 남편이 부인을 알고 부인이 남편을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아는 것이 바로 이렇게 아는 것입니다.

목자가 자신의 양을 아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양과 늘 함께 있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과 함께 먹고 자고 뛰어다니기 때문에 양들의 특징을 너무도 잘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양이 어느 때 힘들어하는지 아파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목자의 관심은 양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삯꾼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을 삯꾼이라고 부릅니까?
글자 그대로 삯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양을 돌아보는 것도 삯을 생각함이요 목자가 된 것도 오직 삯 때문입니다.
삯꾼의 관심은 삯에만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양에게 물을 먹이고 풀을 뜯기지만 선한 목자는 양 자체가 자기의 생명이지만 삯꾼은 양을 돌본 댓가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양들이 위기를 당할 때에 선한 목자와 삯꾼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분별이 되지 않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의 생명을 버려서라도 양을 구하고 삯꾼은 양을 버리면서라도 자기 목숨을 지킵니다.

본문에 12절에 보면 이리가 오는 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이리는 양을 헤치기 위해서 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는 이리는 무엇일까요?
성도들에게 오는 이리는 사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가 오는 것은 시련이며 위기입니다.
두려운 시험이고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입니다.
이리는 삯꾼에게도, 참 목자에게도, 양에게도 달려듭니다.
그런데 삯꾼의 관심은 삯이고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이리가 오면, 시련이 오고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닥치면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삯꾼이 도망간 사이에 양들은 이리에게 물려가고 남은 양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과연 선한목자이십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양을 잡아먹는 목자가 아니라 오히려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목자입니다.
양의 가죽이나 젓이 필요한 목자가 아니라 양의 필요를 위해 자신을 찢어 주는 목자입니다.
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피와 살을 주는 목자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목자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 양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다는 주님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거나 뜻하는 것을 얻으면 잠시 동안은 만족할 수 있으나 이내 또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필요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며 그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십니다.

양은 목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가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 까지 사랑하는 것을 통해 목자를 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인도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아시는 것처럼 양들도 예수님을 알게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자가 양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양과 늘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 세상끝날까지 내가 내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알고 주님을 우리를 아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음성에 순종하심으로 ‘부족함이 없는’ 영, 육간의 축복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같이 시편 23편을 천천히 합독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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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05 -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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