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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 : 5 - 12)
2019년 5월 12일 주일예배
창세기 6 : 5 - 12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한국 말 중에 ‘정’이라는 단어처럼 다른 나라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갑질’이라는 단어입니다.
‘갑질’은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갑과 을의 관계에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의 부당한 행동들을 비꼬는 말로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한국 내에서만 통용되던 갑질이라는 단어가 대한항공 회항 사건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갑질의 뜻을 전세계가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항공은 한국의 국적기라는 명예를 갖고 있지만 최고 경영자 가족의 비리와 함께 직원들에게 쏟아붓던 갑질로 인해 거의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경영자 가족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게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경영상의 문제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아왔었고 그의 아내와 세 자녀들이 차례차례 비리와 갑질로 세간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수사를 받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사망하고 경영권을 놓고 세 자녀가 팽팽하게 대립중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부와 명예를 받아 누리고 있던 이들의 민낯을 보며 과연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무엇일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의 본성은 평안을 찾으며 풍요로움을 누리길 원합니다.
어릴 적 어른들은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하다’고들 하셨습니다.
굶주리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포근한 집이 있다면 걱정이 없다는 말씀들이셨는데 그때만 해도 이런 기본적인 삶의 문제 조차 해결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의 기준이 되는 풍요로움의 정도는 얼만큼일까요?
과연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들은 만족할 수 있을가요?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해치는 일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성의 결과일가요? 아니면 부작용일가요?
가장안전하고 평안해야 할 가정이 분노가 가득하며 공포와 슬픔이 가득하다면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가요?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기름진 밥상과 유흥이 아니라, 두부와 오이, 생강과 나물이며, 그것이 가장 맛있는 자리는, 부부와 아들딸, 손주가 함께 하는 식탁이다’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소박한 상이라도 모든 가족들이 둘러 앉아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 표현한 옛 선현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경에도 가정들의 여러가지 모형을 만나게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 야곱의 가정, 엘리멜렉과 그의아내 나오미 그리고 며느리 룻의 이야기등 다양하고 특별한 가정들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엘가나와 한나 가정의 사무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극과 극의 결과를 보여준 가정들이었습니다.
성경속 가정들의 모형들은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생사화복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되었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삶을 세상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가정을 기뻐하시고 어떤 삶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말씀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던 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양치던 80세 노인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밟았습니다.
여리고성의 모든 사람이 진멸할 때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40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황금기를 이루었던 다윗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었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기 위해 모이신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노아와 그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통틀어 한 시대에 유일하게 성공한 한 가정이 있습니다.
성경은 확고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 : 8

노아가 살아가던 당시를 성경은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다고 전합니다.
죄가 가득하다는 말은 죄의 속성과 영향력이 너무 많아 가득하고 넘치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를 보아도 죄악이 크고 너무 많아서 어느 한 곳도 거룩한 곳이 없었습니다.
신학자 칼빈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는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선도 행할 능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 행하며 창조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비방하고 훼방하며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아서 멸망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않는 탐욕에 연단된 마을을 가진 자들로 저주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 : 10 - 14)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노아의 시대는 죄악이 충만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의 때나 노아의 때와 지금 우리의 시대가 얼마나 차이가 있을가요
하나님을 멸시하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욕정에 이끌려 범죄를 즐기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고 그 책임을 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바울의 권면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대를 본받는 다는 말은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유행을 따라 살아갑니다.
음식도 옷도 집도 생활의 필수품 조차도 모두 유행에 따라 변해가고 따라갑니다.
진리를 탐구한다고 말하는 학문조차도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철학과 사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유행은 바람과 같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게 변해버립니다.
유행이 바뀌면 관심을 잃고 버려지고 또 다른 유행을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유행에 따라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변하지 않습니다.
구원자요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 백성과 영원토록 함께하시겠다고 하신 약속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바램은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세대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세기 6 : 11, 12
그때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해서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습니다.
힘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연약한 자들을 압제하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거짓으로 속이고 빼앗고 더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욕체의 정욕이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들 자신들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마다 선하지 못하고 악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돈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있으면 없는 사람들은 하찮게 여기며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갑질은 힘의 원리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또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갖기 위해 악한 죄라도 서슴지 않고 범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판단처럼 양심이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원리는 ‘하나님의 나라’인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위협과 폭력이나 부패한 정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부패한 죄의 속성이나 찌꺼기들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의 악을 보며 한탄하시고 쓸어버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라 하시며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하셨고 방주가 완성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노아 때에는 물로 심판을 하셨지만 이제는 이 세상을 불로 심판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우리는 방주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의 구원의 방주는 노아의 손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이미 방주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방주가 되십니다.
노아의 방주는 짐승 한 쌍씩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주였지만 예수님의 방주는 누구든지 들어가도 모자람이 없는창조자의 방주입니다.
마지막 때, 죄악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 오는 양들을 모두 구원하실 방주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모이신 여러분 모두는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방주에 들어갈 노아와도 같은 성도들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와 생각의 부패함이 가득 차 넘쳐나고, 끊임없이 죄를 생산해내는 시대에 유일하게 노아 한 사람만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 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바다 속의 물고기가 짜디 짠 바다 물 속에서 살면서도 소금에 절여지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
소금기 가득한 세상에서 살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짜디 짠 소금을 몸에 담지 않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것만이 소금기를 가득 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9절에 보십시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합니다.
노아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사실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늘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진실되게 살기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의롭게 살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이었냐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 처음으로 의인이라 불렸습니다.
악한세대를 살아가면서도 시대의 유행에 물들지 않고 늘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노력은 완전했다고 표현되었습니다.
완전하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성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년에 한번 혹은 한 달이나 일주일에 한번 거룩하기 위해 애쓴게 아니라 매일 매일, 매순간 성실하게 거룩함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세상의 유행이나 세상의 유익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죄악이 가득해 넘쳐나는 세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관심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함에 힘써왔습니다.
그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황당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잠수함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노아가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다 미쳐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에도 그의 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킬 것과 노아의 가정을 악한 세상가운데 구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믿음을 사용하십니다.

저는 오늘 노아의 기사를 보며 한가지 마음을 빼앗긴 부분이 있습니다.
노아의 모든 가족들이 다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으며 모두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입니다.
그래서 더욱 노아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은혜는 개인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노아가 죄악된 세상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수고할 수 있었던 것 조차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노아가 죄악을 이겼더니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를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노아는 죄악 가운데서 혼자 믿음으로 살았더니 모든 사람이 물로 심판을 받아 죽었을 때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살게 해주셨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오직 믿음으로 살았더니 수장되던 남들과 다르게 믿음의 방주에서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노아에게 부어주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노아를 통해 온 가족이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가정이 모두 구원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기준과 시대의 흐름가운데서도 거룩한 삶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거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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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12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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