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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한복음 14 : 19 - 24)
2019년 6월 9일 성령강림주일예배
요한복음 14 : 19 – 24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오순절기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부활절,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이며 교회의 생일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강림했고, 그 성령님의 역사가 이 땅에 교회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던 바로 그날은 오순절이라는 유대인의 명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의 오순은 숫자 50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며, 시내산 밑에 도착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게 됨을 기념하여 지키는 유대절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은 이집트의 고샌 땅에서 파라오의 법을 지키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되는 날을 기념하는 날인것입니다.
오순절의 또 다른 이름은 초실절,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가나안에 도착해서 처음 수확한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며 기념한 절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의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난 날입니다.
거주할 땅이 없어 방황하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새 땅에 들어가 땅을 분배 받고 경작해서 얻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날 자신들이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게 된 것을 기억하며 기념해왔습니다.
하지만 몇몇 시대를 제외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의 진정한 의미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형식적인 절기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2천년전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님을 통해 오순절을 다시금 새롭게 하셨습니다.
변화와 새로움으로 충만했던 성령강림절인 오늘 우리모두에게도 성령님의 충만하심 가운데 마음이 상한자가 치료되시며 포로 된 자가 자유를, 갇힌 자가 놓임을 받는 역사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순절에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이미 사단의 계략에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넘기려고 나가고 어두움은 점점 더 깊어갔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모두는 예수님의 말씀을 숨죽여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되었고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동안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고 믿고 따랐는데 조금 있으면 떠나셔야 한다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런 이별예고에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 : 1 - 3
예수님께서는 내가 잠시 보이지 않는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며 너희와 함께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한복음 14 : 18,19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먼 훗날, 역사의 끝이 되는 어느 날이 아니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오랫동안의 이별이 아니라 조금 있으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과 제자들과 함께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부활하신 예수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다시 보는 때는 마지막 날입니다.
그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알고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심판의 주이심을 알게 될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조금 전에 나간 가룟 유다와 동명이인인 유다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22절입니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한복음 14 : 22
유다 한 사람의 의문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의 의문이었고 초대교회의 모든 공동체의 의문이었으며 현재 우리에게 까지 의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부활하신 메시야이심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후 오랜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믿음의 성도는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야 할 이유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로마의 군사들에 둘러쌓여 골고다를 오르실 때,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저주의 나무에 높이 들리셨을 때, 예수님을 저주하며 조롱하던 유대인들 앞에 나타나셨더라면 사람들을 놀라며 믿었을지 모릅니다.
빌라도와 아그립바를 비롯한 유대의 통치자들이나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셨더라면 즉시로 회개하며 돌아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대의 영향력있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셨더라면 모든 역사적인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역사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심판의 주인이심을 알게 될 것이며 고백의 대상이요 자신들의 신으로 경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극히 소수의 믿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셨습니다.
유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한복음 14 : 23
이런 동문서답이 있을가요?
왜 부활의 몸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시냐는 유다의 질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니요
어찌 되었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 ‘그 사람’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실 것이며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 사람’과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바로 예수님 자신과 그 아버지 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찾아오셔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며 함께하시는 그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 사람, 즉 예수의 제자이며 예수를 믿는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다의 질문인 ‘왜 부활하셔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나타내지 않고 우리에게만 나타나실 것입니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나는 나를 사랑하며 내 말을 지켜 행하는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만 나타날 것이다’입니다.
유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은 신비이며 은혜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 은혜이며 신비로운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누구를 만나신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23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를 사랑하며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말’이란 예수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지킨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주신 계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계명이 무엇입니까?
곧이어 나오는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 : 12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전능자의 모습이 아닌 창조물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예수를 믿어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자는 예수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 : 10
또 공동번역에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요한복음 15 : 17 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이 사랑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성장하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의 가정은 사랑이 가득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쉽게 사랑하지도 사랑을 받지도 못합니다.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 말과 삶에서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알맹이 없이 형식만 남은 유대인들의 오순절 신앙과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종교적인 열심이 있는지의 여부에 있지 않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었는가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한은 다른 서신서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 지느니라” 요한일서 4 : 10 - 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사랑을 받아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그 삶을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권세자나 권능자의 증언이 아니라 성도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더 명확하며 분명해진다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시는가입니다.
23절의 뒷부분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이 말씀의 ‘거처’는 일시적으로 머무는 어떤 곳이 아니라 영원히 머무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조금 전 제가 읽었던 요한일서 4장 12절 하반절에도 이 ‘거처’ ‘머무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을 우리는 내주하심이라고 합니다.
내주하심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식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 : 21 - 23
예수님의 영원한 내주하심은 언약의 성취이며 예언의 완성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성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 : 8
성령강림의 사건은 2천년 전 하루 어느 날 일부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사건이 아닙니다.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이루어진 은혜의 사건입니다.
세상의 종이요 이방 나라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자유자가 되게 하시고 자신의 땅조차 없었던 이들에게 언약의 성취로 땅이 주어지고 그 땅의 소득을 수확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날 성령님께서는 임하셨습니다.
부르신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것 처럼 서로 사랑하며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지는 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그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신 그 날까지 우리의 몸은 여전히 세상가운데 거하지만 성령님의 강림하심과 내주하심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어지는 우리의 삶의 현장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있는 곳이며 서로 사랑하는 지체들이 모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 밖에 어딘가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은 그분의 삶을 닮아가고 따라 갑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 안에 내주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지금 우리의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부활하시고 내주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들의 삶에 부활의 증거로 드러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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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6.09 -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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