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보내기

이름검색
  IDPASS Auto 회원가입 비번찾기


HOME


교회소개
교회주소
안내 및 공지
행사모임일정


담임목사
주일설교
설교동영상
찬양동영상
중보기도실
신앙칼럼


부서장회의
부서별 자료실
온라인 의견수렴


성도/자녀소식
포토뉴스


찬양과 복음성가
동영상모음

영상찬양모음


릴레이성경쓰기
다국어성경
독일어성경
통역팀 자료실

미술반 자료실


교회홈피 사용안내



주일설교

518 152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정승안목사
Subject   베데스다 (요한복음 5 : 39 - 47)
2019년 6월 23일 주일예배
요한복음 5 : 39 – 47 베데스다

성경을 읽다 보면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부분에서 어느 한 순간 마음을 꼭 누르는 듯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강력한 조명이 여러분들의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주시며 결단하시는 역사기 있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5장은 오래된 병을 안고 살던 사람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건의 장소가 되는 곳은 ‘자비’라는 뜻의 이름인 베데스다 연못가입니다.
이 연못가에는 우리의 ‘정자’ 정도 되는 행각 다섯개가 있고 그곳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각종 질병에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곳은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는 첫 번째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치료된다는 아주 신비한 기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온갖 병든 사람들이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모여든 곳이었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힘으로 병을 치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치료된다는 소문 하나만 믿고 모여있었습니다.
‘자비’라는 이름의 연못이며 신비한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였지만, 사실 베데스다는 비극적인 곳이었습니다.
단지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리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이 비극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근처에 조그마한 연못에 간혹 천사가 내려와 앉았다 갑니다.
천사가 머물다 간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병이 치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곳의 이름 조차도 ‘자비’라는 뜻의 베데스다입니다.
그런데 자비의 곳, 베데스다, 천사가 내려앉는 자리 조차 경쟁해야만 합니다.
1등한 사람만이 그 자비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뒤에서 그곳을 바라다 본다면 그곳은 자비의 자리가 아니라 비극의 자리와도 같습니다.
최고가 되어야만 하고 1등만이 살아남는 사회에 살아가는 2등이하의 사람들은 모두가 비극 속에 살고있는것입니다.
이곳에서 간혹 물이 움직이는 짧은 순간에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1등이 되고 원하는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곳은 조그마한 물의 움직임 만으로도 아수라장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38년동안 병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스스로 연못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못에 간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간 후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며 심지어 그 사람을 들어 물에 넣어줄 이웃이 없다는 것은 더욱 절망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질병 뿐만 아니라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도 도움을 구할 곳 조차 없다는 사실이 이사람에게는 더 큰 비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다가와 ‘네가 낫고자 하느냐’물으셨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시며 말씀으로 그를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체 누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 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며 하나님과 예수 자신이 동등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안식일을 범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하며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 예수님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그 자리를 피할 법 한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동안 자신이 행했던 기사와 이적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행하셨던 역사들과 결이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적들을 예수님께서 나타내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며 그분의 역사를 직접 보았으므로 자신 또한 행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시며 책임을 물어 심판하셨던 것처럼 아들 또한 심판자이시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요한복음 5 : 30-32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흥분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두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셨던 모든 일들을 보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역사를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죽은 자도 살리고, 38년이나 되도록 고칠 수 없었던 질병도 말씀으로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 보다 더 큰 일들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지만 그 어떤 일도 스스로 하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어떤 것을 위해 일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기 위해서 자제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분노한 유대인들의 질문은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자리를 들고 가게 함으로 율법을 범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고 나는 하나님께서 하라 명하신 것만을 한다'고 하시며 답을 하셨습니다.
거기에다 ‘내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도 있지만 순종함으로 참고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모든 말씀들을 유대인들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근거와 증거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범하기까지 하는 사람을 도무지 믿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더 어렵습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요한복음 5 : 33-36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신을 증명하시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시험 받으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40일동안 금식하신 예수님 앞에 사탄이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4 하시며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할 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을 만들어 보이셨으면 깜짝 놀라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머리 숙였을 것인데 말입니다.
또 ‘거룩한 성,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예수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고 했을 때 멋지게 뛰어 내리시며 천사들이 받들지 않아도 땅에 떨어지거나 돌에 부딪히지 않고 보란듯이 서실 수 있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버릇없는 사탄이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세상을 다 주겠다”고 했을 때 심판의 불을 발하셔서 사탄을 진멸하셨더라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죄의 문제로 여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사탄의 세가지 시험은 각각의 내용과 의미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단 하나의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망각케 만들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라고 사탄이 유혹하는 것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실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향해 로마의 병사들과 몰려든 유대인들이 ‘네가 정말 메시야이거든,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네 스스로 너를 구원하여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합니다.
그때 ‘그래 내가 바로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소리를 발하시며 광명한 모습으로 내려오셨다면, 하늘의 천군과 천사의 우뢰와도 같은 찬양소리를 영광스럽게 받으시며 뭇 사람들 앞에 서셨더라면, 사람들이 놀라며 믿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탄의 세가지 시험이나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일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거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거나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며 38년된 병자가 말씀으로 낳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탄의 시험에 기적을 보이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셨던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기사와 이적으로 놀라게 하며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 이심을 증명하셔서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설득하시러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한의 증거를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한복음 1 : 29,30 라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1 : 32-34 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요한의 증거 외에 또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요한복음 5 : 37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을 받으시고 요단강가로 나오셨을 때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 : 10, 11
또 세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9:7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자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오경을 통해 모세는 언약의 성취인 구원의 역사와 증거들을 기록하고 남겼으며 그 글을 믿는 다면 그 글의 중심이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반드시 알게 될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모르는 이유는 모세의 글조차도 제대로 믿고 행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이모든 것 보다 거 큰 증거가 있다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대로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 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며 성도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성도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처럼 세상으로부터 죽는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세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근심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잠시도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버렸습니다.
어떤 제자도 예수님의 고난과 근심과 사역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죽기까지 순종하며 예수님의 길에 동참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죽으셨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시고 내주하심으로 비로소 눈이 떠졌습니다.
그들 모두는 복음과 십가자의 구원을 인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거듭난 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들의 삶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능력이 있었으며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듭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도우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인 되어진것을 성령님께서 증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증거는 예수그리스도의 증거이며 성령님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베데스다가 비극의 장소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사람들은 비극의 장소에 희망을 품지만 우리모두는 진정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에게 소망이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거룩하다고 하는 우리의 공동체가 자비가 사라진 비극의 자리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의 이웃들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며 우리 끼리만 잘 먹고 잘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함에 나오는 삶의 모습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로 ‘너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할 때 담대하게 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증명해 내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프린트출력을 위한 화면보기
DATE: 2019.06.23 - 11:08


 이전글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사야 55 : 1 - 5)
 다음글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한복음 14 : 19 - 24)
글남기기삭제하기수정하기답변달기전체 목록 보기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보기
518Simple view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사사기 9 : 7 - 15)2019.11.10 12
517Simple view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 6 : 4 - 9 )2019.11.03 20
516Simple view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시편 98, 116편)2019.10.27 32
515Simple view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라 (신명기 16 : 13 - 17)2019.09.29 140
514Simple view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창세기 28: 10-19)2019.09.22 145
513Simple view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마가복음 3 : 20 -...2019.09.15 153
512Simple view내게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 : 1 - 10...2019.09.08 186
511Simple view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기 23 : 1 - 17)2019.09.01 219
510Simple view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마가복음 12 : 28 -...2019.08.25 217
509Simple view하나님의로부터 난 의 (빌립보서 3 : 4 - 9)2019.08.18 213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삭제/복사/이동 하기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복사 체크된 항목 복사
현재페이지가 첫페이지 입니다. 다음페이지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끝페이지
글남기기 새로고침
이름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제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내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 메인화면으로 돌아가기

인터넷성경

(c) seit 2008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SEONHAN MOGZA Evangelische koreanische Gemeinde Berlin e.V., Bundesallee 76A, 12161 Berlin
Tel. (030) 8550-6368
Mobil: (0176) 6318-9090 
Postbank Kontonummer 470 401 07, BLZ 100 100 10
info@mogza.com

2019년 교회표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니"
(빌 1:20)

집회안내

주일예배:오후 3시
(주일학교: 13시 30분)
수요예배: 오후 5
토요기도회: 오전 7시

주요 사이트 바로가기

연중 행사계획표 
온라인 교우주소록
 
월별 생일자 명단

*** 동영상 다시보기 ***


파트너 독일교회

Zum Guten Hirten
Philippus-Nathanael

한글학교

독일어 세미나

베를린
유학/관광/생활정보
벼룩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