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보내기

이름검색
  IDPASS Auto 회원가입 비번찾기


HOME


교회소개
교회주소
안내 및 공지
행사모임일정


담임목사
주일설교
설교동영상
찬양동영상
중보기도실
신앙칼럼


부서장회의
부서별 자료실
온라인 의견수렴


성도/자녀소식
포토뉴스


찬양과 복음성가
동영상모음

영상찬양모음


릴레이성경쓰기
다국어성경
독일어성경
통역팀 자료실

미술반 자료실


교회홈피 사용안내



주일설교

518 152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정승안목사
Subject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디모데전서 1 : 12 - 17)
2019년 7월 7일 주일예배
디모데전서 1:12–17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오늘 본문은 영적인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입니다.
에베소교회로 파송된 디모데에게 목회자적 당부를 담은 바울의 깊은 애정이 담긴 서신서입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의 시작은 언제나 처럼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본문의 앞부분에서는 에베소교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인 거짓 선생들, 즉 이단들의 본질 적인 정체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이라는 말로 시작해서(12절) “영원하신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디모데전서 1 : 17 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17절).
감사와 송영의 말씀이 되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바울에게 허락하신 놀랍고 풍성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넘치도록 감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로 택하심을 받은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그는 자신에게 임한 은혜를 복된 것으로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디모데전서 1 : 12
그는 먼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12절 상)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을 당신의 사역자로 사용하시기 위해 능력을 주셨습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을 불러 직책을 맡기고 책임을 물으신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고 힘들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미 내적인 능력과 외적인 능력을 주셔서 장차 감당해야 할 사역들에 두려움 없이 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12절 중)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울이라는 사람이 본래 믿을 만한 사람이라거나 충성된 사람인 것을 꿰뚫어보시고 그를 충성되이 여기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이 직분을 맡을 만큼 적당하며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본질적으로 충성된 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충성된 자가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내가 감사함은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12절 하)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의 능력 있음과 충성됨을 먼저 꿰뚫어 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충성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놀라운 사역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충성되게 바라보시며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하셨음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은 자신에게 임하게 된 은혜를 고백하며 디모데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였으며, 어떻게 긍휼을 얻게 되었으며,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와 같은 긍휼을 베푸셨는지를 간증하며 감사의 이유를 더욱 확장해서 설명합니다.
디모데의 영적인 아버지이며 스승인 바울이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디모데전서 1 : 13
바울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세단어로 함축해서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디모데전서 1 : 13 상
비방자라는 단어는 이전 버전의 성경에서는 훼방자라고 했습니다.
비방자요 훼방자는 바울이 예수님을 악하게 말해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모독하도록 강요하며 예수를 따르는 삶에서 떠나도록 강요해왔었습니다.
바울은 또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심하게 핍박하며 잔인한 공격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박해를 피해 움추러든 성도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예수의 도에서 떠나도록 했습니다.
바울의 박해는 성도들에게 향해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바울의 박해가 곧 예수 자신에게 가해지는 박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단어인 폭행자는 거만함과 불손함이 함께 포함된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고 창피를 주는 일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바울은 자신의 지난 과거의 모습이 비방하는 말에서 시작해서 핍박하는 행동을 거쳐 마음가득 담겨서 넘치는 폭행자가 되고 있었던 죄의 본질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바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자신이 어떻게 긍휼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어쩌면 악한 마음으로 가득 차있고 살짝만 건드려도 공격성을 보이는 희망없는 사람과도 같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구제불능인 자를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으로 초대하시고 은혜 가득한 손으로 만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긍휼함을 입은 상태임을 여러 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미치지 못할 곳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긍휼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14절에 그의 고백을 한번 보십시요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 : 14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하신 은혜는 마치 폭우가 쏟아져 강줄기를 힘차게 굽이치며 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쓸고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의 강물은 비극을 안겨주거나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기 때문에 강물이 쓸고 간 자리에 곡식들이 더욱 풍성하게 자라나는 은혜의 자리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퍼 부으신 긍휼하심의 은혜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에 믿음을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악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에 사랑이 차고 넘치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설명하던 바울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갑니다.
미쁘다는 단어는 서신서에만 다섯번 정도 나온 단어인데 미쁘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진 곳들은 모두 중요한 가르침을 이야기 할 때만 사용되어졌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 : 15
본문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중요한 가르침, 미쁘다고 하는 말은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복음의 내용은 거짓 선생들의 어리석은 변론이나 세상적인 가치가 기준이 되는 말이 아니라 참되며 신실합니다.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은 어느 한곳으로 한정되어있지 않고 온 우주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은 온전하며 신뢰할 만하기 때문에 누구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도록 정죄하기 위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죄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메시지는 모든 사도들과 초대교회 이후의 모든 교회들의 바른 교훈이며 교훈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전해지는 복음은 개인에게 적용되어집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온 우주적인 구원이면서도 개인적인 구원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울은 종종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곤했습니다.
여기에 자신을 더 낮춰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의 여러 번역본들은 괴수라는 단어를 ‘으뜸 가는 자’, ‘가장 큰 자’, ‘가장 나쁜 자’라고 표현합니다.
상식적으로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바울 시대에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측량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은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 사람들 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바울의 이 고백은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죄에 대해 책망하실 때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나며 자신의 죄를 누군가와 비교할 수 조차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죄에 대해 너무나 생생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악한 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에 의해 양심이 일깨워지고 책망받게된 모든 죄인의 공통적인 고백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선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룩하지 못하며 죄가 가득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 죄는 무겁거나, 가볍거나, 작거나, 많거나에 관계없이 동일한 의미를 갖고 동일한 결과를 갖게됩니다.
나는 누구와 같이 살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죄인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인생들은 누군가와 비교해서 죄에 대해 판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죄를 직접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 : 11 -13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라고했던 바리새인이 비교할 대상이 아닌 온전히 자신을 바라봤다면 결국 자신의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던 세리처럼 고백하게 될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크고 흉한 죄인인지 자각하며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러 오시는 참되고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바울의 고백은 결국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구원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구원받았음을 깨닫고 그 은혜에 기뻐하며 감사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바울과 구원받은 우리에게 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긍휼하심과 자비로우심은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어떤 논리적인 말로나 철학적인 사유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을 만한 노력이나 수고로움이 있거나 조건이 충족되어져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로우신 용서의 근원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다만 한 두 가지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디모데전서 1 : 13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에서 자신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로서 예수그리스도의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 까지 하고 결박하고 옥에 넘기는 것이 당연한 줄로 생각해왔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진리에 대해 자신이 무지했음을 고백한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무지에서 출발한 불신과 잘못된 확신과 열정은 여전히 잘못된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 또한 바울에게 있습니다.
단지 그의 행동은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대적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고의적인 불순종이 아니었고 무지함으로 인해 믿지 않았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으로 품어주셨던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미래의 누군가의 믿음에 관련된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1 : 16
바울의 회심은 매우 독특합니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예수님께서 직접 그 귀에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빛을 인해 실명하게 되었다가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동일한 경험을 통해 회심하는 경우는 아마 모르긴 해도 바울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회심의 본질은 모든 회심하는 이들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메섹으로 향하는 바울을 끝까지 인내하시고 참으셨습니다.
스테반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현장의 책임자로 자처하며 예수의 제자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데 혈안이 되어 다메섹까지 가는 동안 인내하시며 참으셨습니다.
그의 행동 중 어느 한 부분 조차 환영 받지 못할 사람임에도 그가 돌아서기를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회심은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2천년 전의 바울이 이 말씀을 통해 지금도 생생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요
예수님께서는 죄인중의 죄인이며 괴수와 같은 나에게조차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시고 계십니다.
망설이지 말고 들어와 주님의 긍휼하신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의 바울의 열정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긍휼하심과 충만한 은혜,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직분과 책임을 받은 자들은 바울이 본을 보였던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강력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고 그 경험의 증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음에도 끝까지 인내하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이 디모데에게와 그가 복음을 전하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넘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본이 된 바울과 같이, 바울의 권면을 사역의 현장에서 드러내게 된 디모데와 같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죄인를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심과, 긍휼을 베푸시는 심판자 이심을 삶을 통해 드러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1 : 17






프린트출력을 위한 화면보기
DATE: 2019.07.07 - 10:54


 이전글 서시(마태복음 16 : 13 - 20)
 다음글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사야 55 : 1 - 5)
글남기기삭제하기수정하기답변달기전체 목록 보기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보기
518Simple view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사사기 9 : 7 - 15)2019.11.10 12
517Simple view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 6 : 4 - 9 )2019.11.03 20
516Simple view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시편 98, 116편)2019.10.27 32
515Simple view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라 (신명기 16 : 13 - 17)2019.09.29 140
514Simple view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창세기 28: 10-19)2019.09.22 145
513Simple view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마가복음 3 : 20 -...2019.09.15 153
512Simple view내게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 : 1 - 10...2019.09.08 186
511Simple view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기 23 : 1 - 17)2019.09.01 219
510Simple view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마가복음 12 : 28 -...2019.08.25 217
509Simple view하나님의로부터 난 의 (빌립보서 3 : 4 - 9)2019.08.18 213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삭제/복사/이동 하기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복사 체크된 항목 복사
현재페이지가 첫페이지 입니다. 다음페이지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끝페이지
글남기기 새로고침
이름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제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내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 메인화면으로 돌아가기

인터넷성경

(c) seit 2008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SEONHAN MOGZA Evangelische koreanische Gemeinde Berlin e.V., Bundesallee 76A, 12161 Berlin
Tel. (030) 8550-6368
Mobil: (0176) 6318-9090 
Postbank Kontonummer 470 401 07, BLZ 100 100 10
info@mogza.com

2019년 교회표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니"
(빌 1:20)

집회안내

주일예배:오후 3시
(주일학교: 13시 30분)
수요예배: 오후 5
토요기도회: 오전 7시

주요 사이트 바로가기

연중 행사계획표 
온라인 교우주소록
 
월별 생일자 명단

*** 동영상 다시보기 ***


파트너 독일교회

Zum Guten Hirten
Philippus-Nathanael

한글학교

독일어 세미나

베를린
유학/관광/생활정보
벼룩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