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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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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서시(마태복음 16 : 13 - 20)
서시

2019년 7월 14일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주일예배설교 (임재환 목사)

안녕하세요? 저는 올리브선교단체를 섬기고 있는 임재환 목사입니다.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주일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을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감사와 평안의 인사를 드림/부족한 사람인데 설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설교 초청을 해 주신 정승안 담임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상사병에 걸려본 적이 있습니까? 상사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고 하지요. 그 만큼 무섭고 치명적인 병이 상사병입니다. 상사병은 누군가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싶은데 못할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고백을 했는데 상대편이 받아주지 않아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상사병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지요.

저도 상사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한동대학교에 다닐 때 술람미 같은 자매를 사모함 / 101송이 장미꽃과 '즐거운 편지' 시로도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고/ 중국 노래 웨이량따이비아오워더신(저 달이 내 마음을 대표한다)의 노래도로 마음을 얻을 수 없었지요. / 마지막으로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 양화진에서의 사랑고백 / 나는 그 날 술람미 자매의 마음을 얻어서 상사병에서 나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려고 해도 알아감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아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고백과 신앙고백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들이 필요할까요? 그런데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사랑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또는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여러분들이 오늘 설교를 통해서 꼭 찾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수교를 1992년 8월 24일에 맺었습니다. 수교를 맺는다는 것은 국가와 국가간에 정식적인 외교관계를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전부터 중국에 꼭 가고 싶은 이유가 2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안중근 의사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가 일제시대 조선 총독이었던 이토오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암살한 하얼빈 역과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대련에 있는 여순 감옥에 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의 삶의 행로들을 따라가며 그분의 삶의 자취들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그분과 일심동체가 되는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곳,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 위치한 명동촌을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윤동주의 시들을 중학교 때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윤동주가 살았던 곳을 가보고 싶었고, 그 시가 쓰여진 배경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윤동주는 일제시대의 '저항시인'이라는 애칭이 붙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 시집에 서문 대신 쓴 시 ‘서시’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고백이며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유고시집에 실려 있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 윤동주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윤동주의 시들 중에서 "십자가"라는 제목의 시가 있지만 "서시"가 더 기독교적인 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휴머니스트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걸어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시인 윤동주가 서시를 통해서 따르고자 했던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서시'를 가장 아름다운 기독교문학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도 좋아합니다. 전문은 길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부분만 읽어 보겠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아. 얼마나 아름다운 싯구입니까? 저는 윤동주가 보았던 별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선교사로 있을 때 명동촌에 밤에 가 보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명동촌인 북간도 만주벌판의 밤하늘을 보고서야 시 ‘별 헤는 밤’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그야말로 별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 때, 별동별이 하나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며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그때 저는 시 ‘별헤는 밤’의 배경인 만주벌판의 밤하늘 아래에 서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또한 '서시'에 나오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는 싯구가 비로소 가슴 속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윤동주 시인을 얼마나 좋아했냐 면, 1997년도 여름에 중국으로 단기선교를 갈 때, 책으로는 성경책과 윤동주의 시집만을 가지고 갔습니다. 중국 장춘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연길 역으로 갈 때, 달 빛에 물들인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보며 감격했고, 그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간 윤동주 시집을 읽었습니다.

여러분! 윤동주 시인이 쓴 서시는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 청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순결한 자기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예외 없이 자신만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만약에 없다면 그는 아직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선 단독 자로서 당신은 이렇고 이러한 분이시기 때문에 나는 당신 앞에서 이렇게 살겠다' 라고 결단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 고백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그 내용이 오늘 읽었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 마태복음 16장 13-20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말씀을 선포하고 병 고치고 귀신을 쫓고,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지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먼저 물어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지 않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힐링, 티칭, 프리칭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선자자들도 힐링, 티칭, 프리칭의 역할들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 사역 이전에 비슷한 사역을 했던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의 얼굴을 예수님의 사역들을 경험하며 떠올렸던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정치/군사적인 왕으로 오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린 왕이 로마 식민지 압제 시대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릴리 지역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왕의 모습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대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제대로/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병을 고쳐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복을 빌어주는 선지자로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기독교 용어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제 12제자들에게 물어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질문을 듣자마자 이야기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질이 급했기 때문에 천천히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급하고 강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훗날에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모두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고백의 최고의 모범이 되었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메시야의 헬라어 표현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음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는 왕과 제사장과 선자자의 역할을 모두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모든 겸한 왕이 바로 당신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좀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과 영생의 길을 전하시는 참 선지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참 제사장이십니다. 교회와 온 세상을 의로 통치하실 왕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온 세상의 창조주와 섭리자와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고백입니다. 결국 베드로의 이 고백은 천지창조부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 대한 완전성에 대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고백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세상과 나의 주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무척이나 흡족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어 원어로 된 문장을 우리 말로 쉽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너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였는데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너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가 복이 있는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베드로 너의 복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너의 신앙고백은 너의 힘과 능력과 이성적인 사고로 가능한 게 아니야. 바로 ‘하나님이 계시해 주고 알려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 하나님이 계시해 주고 알려주셨다 함을 우리가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신앙고백을 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어떤 존재를 충분히 경험하고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누가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만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사람만이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삶을 더욱 주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북극성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3번 배반한 자신의 실수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갖게 하였습니다. 그 신앙고백이 그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한번의 설교로 3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은 베드로에게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효과는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오늘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교회와 가정과 직장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확장하고 넓히기 위해서 헌신된 삶을 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헌신하고 교회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권리이며 의무입니다.

그런데 헌신 이전에 우리가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구하며 그분을 체험하고 맛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사랑고백 즉 신앙고백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이 있는 사람은 그 신앙고백대로 살기 때문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헌신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고백이 없이 하는 헌신은, 내 능력과 힘과 노력으로 하기 때문에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시작한 것 같지만 결국은 '육체'로 끝마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헌신하는 성도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기쁘고 감사하게 주님을 위한 영광된 삶을 살며, 교회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다니엘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고백(다니엘서 3장 16절-18절)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살 때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느브갓네살 왕의 밑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그 때 느브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놓고 모든 백성이 그 앞에서 절하라고 함 / 이를 거절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참소함 / 크게 분노한 느부갓네살 왕이 풀무불에 던져서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함/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러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고백은 일제시대 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감옥에 들어가서 고난 당하고 순교한 분들의 신앙 고백과 같습니다. 또한, 625 전쟁 때에 공산당에게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교한 분들의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풀무불에 던져졌어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아니함 / 느브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높임./ 생명을 건 신앙고백이 오히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살게 하였고 /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고백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대적 환경이라 함은 지금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믿음의 길을 가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행동하며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빌론의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목숨을 건 신앙고백을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다음과 같은 신앙 고백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해, 너의 삶이 더 중요한거야. 남을 생각하지마. 행복은 너가 만들어 가는 거야. 하나님은 없어. 너의 욕망대로 살아.”라고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아니야,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기쁜 삶이야” 라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삭개오를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세리장이요 부자/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국노라고 싫어함/ 그가 예수님을 풍문으로 듣고 있다가 여리고에 온다는 소식을 들음 / 키가 작아서 볼 수 없음 / 돌무화나무에 올라가 봄 /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네 집에 유하겠다고 함 / 기뻐하며 영접함 / 그러고 나서 삭개오가 자기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러한 삭개오의 신앙고백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9절에 단박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의 신앙고백은 주님 뜻대로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한 후의 바른 신앙고백은 반드시 삶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신앙고백을 하면서 우리 삶이 주님 뜻대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신앙고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초동 사랑의 교회를 섬기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이 말년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제자훈련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제자훈련만 시키면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삶이 변화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제자훈련을 해도 실상은 교인들의 삶의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더라. 오히려 내가 교인들이 주님을 진심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방향으로 노력했다면, 지금보다는 사랑의 교회 교인들의 믿음의 수준이 높았을 것이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교육과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교인들이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교육과 훈련이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 내 어머니 이정례 집사의 신앙고백 *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가기 때문에 교회에 감사헌금 100만원을 하라"

이정례 집사의 간증을 한다.

하나님이 집 문 앞에 와서 어머님을 만나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오장육부를 꺼내서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고 하셨다.

치매와 파킨슨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그려러니 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어머님은 죽으면 할 수 있는 장기기증을 신청해 놓으셨다.
(아버지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래서 자기라도 다른 이에게 장기 기증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기기증을 신청하지만 뇌사판정을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장기기증을 할 수가 없다.

1년에 만 명 정도가 뇌사판정 신청을 하지만 그 중에서 500명 정도가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기증을 할 수 있다. (엄격한 판단 기준 적용 / 불시에 3명의 의사들을 호출하여 각기 따른 시간에 뇌사판정을 하게 하여, 3명의 의사 전원이 뇌사판정을 인정할 때 가능함)
그래서, 뇌사판정을 받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5명의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천국으로 입성하셨다. (각막 둘, 간, 신장 둘)

제 어머니 이정례 집사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증거가 되시며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믿었던 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고백, 신약에서는 삭개오의 신앙고백, 현대에서는 제 어머니인 이정례 집사의 신앙고백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렇게 시대와 사람마다 신앙고백의 모양과 색깔은 다르지만 / 그 신앙고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십니다.

오늘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께 존귀하신 주님의 마음을 담아서 권면 드립니다.

주님을 실존적으로 만나고 체험하십시오. 그분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서 온전하게 맛보십시오. 그런 후에 주님을 향한 여러분만의 신앙고백을 올려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신앙고백대로 교회 공동체를 섬기십시오. 더 나아가 일상의 자기 삶의 모든 영역들을 신앙고백대로 사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확장을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이루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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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7.14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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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교회표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니"
(빌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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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오후 3시
(주일학교: 13시 30분)
수요예배: 오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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