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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로마서 6 : 1 - 11)
2019년 7월 28일 주일예배
로마서 6 : 1 – 1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노예 해방 선언을 하고 2년뒤 미국 전역에 노예 해방령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누군가의 노예로 물건처럼 여겨지던 이들이 법적으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자유를 얻은 아프리카계의 미국인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60년대 말이었으니 백 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처음 자유가 선포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자유자에게나 노예에게나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끌려와 매매되고 누군가의 소유물과 같이 되어 살아오던 이들이 그들의 주인으로부터 해방 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이 낭독되었을 때 흑인노예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누군가의 소유로 살던 이들이 인권을 회복하고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모든 노예들이 자신들이 자유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했다는것입니다
모두가 바랄 것 같던 노예 된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할 것 같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농장의 주인들은 모든 노예를 풀어주었지만 정작 흑인노예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배상 없이 빈손으로 풀려난 노예들에게는 삶에 대한 불안함만 가득했습니다.
여전히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농장주인에게 일을 얻어 그전과 동일한 일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옛 주인의 노예로 살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보다 못한 대우에도 수긍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투표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까지 백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었던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자유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권리를 주장하기 전 까지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치 성도가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선포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있는 것 처럼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해방이 선포되었고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사단의 유혹과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자신이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었노라고 변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자유케하신 예수님의 피를 부정하거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였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하고 나약함의 상징이라는 십자가위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의 사슬로부터 해방이요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죄와 사망의 종이요 멸망의 자녀가 이제 생명의 자녀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진 것입니다.
구원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들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 : 2
죄와 사망의 종이었던 신분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한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육신의 욕심과 죄의 본성에 쩔쩔매며 살고 있냐는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의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 : 3, 4
바울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의 참된 의미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기게 됩니다.
그 상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으로 부터, 죄로 부터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나서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게 됩니다.
그 상태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의식은 세상으로부터의 사망을 선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났음을 선포하는 거룩한 예식인것입니다.
그 거룩한 예식에 우리는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이 예식에 예수님이 빠지면 세상으로 부터의 죽음도 생명의 삶도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거룩하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뒤집어 씌워서 세상으로 부터는 죽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세례는 등록교인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주는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기 때문에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회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누군가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등록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세워지며 세례를 받게 되는 기간은 몇 주나 몇 달 혹은 몇 년에서 몇 십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세례는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구리뱀을 쳐다보고 구원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믿음의 백성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로마서 6 : 7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거룩한 성도들은 죽게 되어집니다.
죽게 됨으로 의롭다는 칭함을 얻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은 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은 유혹에서 벗어났습니다.
죽은 자들은 죄를 짓는 일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죄의 형벌로부터도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죽음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죽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모든 형벌과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너무 잘아는 바울은 자신이 죽어야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한숨 섞어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 : 24
죽어야만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데 죽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건져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로마서 7 : 25上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자신을 건져낼 때 만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생명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한가지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맞아 땅에 묻힌 사람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사람들은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죄를 범할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 6 : 6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은 죄나 사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에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노예나 종은 그 주인의 말에 순종하며 그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러나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사람은 더 이상 옛 주인에게 순종하거나 복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옛 주인을 대할 것입니다.
주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모든 명령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옛 주인이 ‘가지고 와!’ 라고 외쳤을 때 예전처럼 ‘무엇을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하고 싶은 유혹이 들 수 있습니다.
오래된 노예의 습관이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에게는 뭘 가져다 주어야 할지 다시 물어볼 의무도, 가져다 줄 책임도 없는 것입니다.
자유를 얻은 자에게는 당당하게 돌아서서 무시할 완전한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들은 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죄를 향해서 당당하게 돌아설 수 있는 용기가 여러분들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를 통해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로마서 6 : 8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죄로부터 죽었습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이야기는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부활과 같은 연합한자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로마서 6 : 9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다시는 사망이 우리를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화, 즉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처음 그들의 삶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완전히 바뀝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고 임마누엘 하시며 그들의 삶은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더 이상 그들을 묶어둘 수 없게 되었고 삶의 목적과 방향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었음과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죄의 유혹 앞에 있는 자유자들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 : 11
하나님께서 확증하시고 선포하셨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의 증거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믿는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전히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 당당하고 용기 있게 발길을 돌려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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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7.28 -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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