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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나는 생명의 떡이니 (요한복음 6 : 26 - 35)
2019년 8월 4일 주일예배
요한복음 6 : 26 - 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전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만 오천명을 먹이신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아 이곳까지 온 것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냐’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 내내 교회는 ‘금욕’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물질에 대한 욕심과 삶의 애착이 결국 파국으로 이끌어감을 설명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물질이 부정한 것 처럼 여기며 삶의 현장을 떠나는 것이 거룩한 삶인 것처럼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행보를 보면 물질의 문제나 삶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신앙의 걸림돌로 여기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하던 사단의 첫 번째 시험은 돌들을 떡 덩이가 되게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40여일을 금식하고 배가 고픈 상태에 있는 예수님에게 사단은 현실적인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유혹합니다.
인생의 목적, 삶의 목적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임을 선포하시며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포는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신 것은 아니셨습니다.
자신을 따라오던 사람들의 양식을 걱정하시고, 제자들의 배고픔을 외면치 않으셨으며, 함께하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동의 자금을 관리하도록 제자 중 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가 인생의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몰려온 사람들을 대하셨던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러한 문제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배고픔의 문제를 안고 해결하기 위한 분주한 삶이 잘못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아 달려온 사람들이 잘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일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접근이며 경계해야할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실 수 있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가에 초점을 맞춰 믿음의 백성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예수님의 관점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세워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힘이 있었으며 능력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을 양육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 있고 풍성한 말씀이었습니다.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들고 가지만 그들의 지도자들에게서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위로조차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있게 전하며 불치의 병들을 고치신다는 소문으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그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은 긍휼하심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벳세다 언덕에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고팠을 테지만 그들을 먹일 만큼의 돈도, 그들의 필요를 다 채워줄 만큼의 양식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은 5천여명의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양식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필요를 외면하시지 않고 채워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여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음식이 12바구니 가득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이치와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자신이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시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 헤메며 달려온 사람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한복음 6 : 30
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한복음 6 : 31
우리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뭔가를 보여주십시요
예수님 앞에 몰려온 사람들은 그들의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 백성을 인도하여낸 역사를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그런 존재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치거나 굶주리지 않도록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광야는 그야말로 메마른 땅입니다.
식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막과 돌만 보이는 척박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40여년동안 한결같이 만나로 그 백성들을 먹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지극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 있던 이스라엘은 감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자신들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었더라면 아궁이에 고기를 가득 올려서 배부르게 먹었을 것인데 광야에 나와서 굶주려 죽게 됐다며 원망합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말입니다.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의 종이었습니다.
종의 집에 고기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많아서 배가 부르게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매일 이슬과 같이 내려앉은 만나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자신들의 육체의 필요만을 채우는 음식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명확히 해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들에게 배고픔과 갈증은 육체적인 필요를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이를 해결해주시던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바위사이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시는 표적이었습니다.
광야에서의 만나와 샘물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살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만드는 은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육체적인 해소 같지만 예수님께서 메시야 이시며 이를 위해 오셨음을 증명하는 표적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여러가지 기사와 이적을 경험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병을 고치고 배를 채운것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더 큰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표적은 모세의 만나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모세의 만나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40여년 동안 먹었던 만나는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는 모세의 능력이나 신비로운 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광야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 2천년 전의 유대인들, 그리고 현재의 저와 여러분 모두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필요가 있습니다.
배고픔과 갈증, 세상이 주는 욕구는 충족이 되어지는 듯 하지만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찾게 합니다.
근본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필요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저주의 사슬에 매여있는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거룩하며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지 않은 인생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또 한가지의 근본적인 필요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해결 하지 못한 치명적인 문제가 바로 죽음에 대한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는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공포입니다.
죽음의 공포는 사람들로 수많은 종교와 종교적인 신념들이 만들게 했습니다.
모든 것의 결과가 되는 죽음은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을 갖도록 만듭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그 동안 소유하려고 애쓰고 수고했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루어내는 성취도, 성공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삶의 이 궁극적 문제, 영생의 문제, 인생의 마지막 이라는 문제 앞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 : 35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신지를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며 ‘나는’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보내신 분이신 당신을 누구라고 말해야 하느냐는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이라고 하심은 바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자기 증명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선언하실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인생의 문제, 근본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모세가 자신들에게 만나를 주어 먹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조상이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모세보다 큰 이가 여기 있으니 모세를 통해 주셨던 만나는 먹고 나면 여전히 배고프고 광야의 샘물은 마시고 나면 다시 갈증이 나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은 영원하며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포인 ‘나는 생명의 떡이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하고 완전한 양식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필요의 해답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사를 통해 인류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탕자가 그 아버지를 떠나려고 할 때 그는 자신의 많은 필요를 떠올렸습니다.
우선 그는 아버지의 재산이 필요했고 독립해 나가 마음껏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모든 것을 다 탕진한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죽음 앞에 선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달려가 끌어안으며 노예 같은 몰골로 선 아들의 발에 신을 신기고 새 옷을 입히고, 손가락에 상속자임을 상징하는 반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입니다.
죽음의 공포속에서 그가 생각해낸 것은 자신이 아버지를 떠날 때 처럼 수많은 자신의 필요였지만 그의 필요는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 단번에 채워졌습니다.
그가 그의 필요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만나게 됨으로 확실하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어리석은 아들의 근본적인 필요는 아버지를 만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했으면서도 더 큰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처럼, 한 낮의 뜨거운 태양 사이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뜨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처럼, 해결되지 않는 배고픔과 갈증가운데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 가정과 산업과 환경들의 문제들로 잠 못 이루고 고민하며 힘겨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은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믿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 : 35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얼마나 채워주실 수 있는 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필요는 예수님 자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의 떡이 되신 완전하고 영원한 필요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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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8.04 -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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