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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하나님의로부터 난 의 (빌립보서 3 : 4 - 9)
2019년 8월 18일 주일예배
빌립보서 3 : 4 -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바울사도는 그가 사랑하는 교회들이 올바른 복음 위에 견고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삶의 환경에 따라 복잡한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고 내외적으로 많은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극단적인 유대주의자들의 공격과 로마의 공권력의 압제가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율법주의자들과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의 공격이 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공격으로부터 믿음을 지키며 올바른 복음위에 견고해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들도 올바른 복음 위에 견고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와 올바른 신앙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3장 1절이 “끝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빌립보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며 권면하게 될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2절에서는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빌립보서 3 : 2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들은 누구이며 행악자들은 누구이고 몸을 상해하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기 어렵지만 빌립보 교인들은 누구를 말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주의를 주장하고 할례를 요구하며 행위를 강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3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립보서 3 : 3 라고 하며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할례를 받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참 명예롭고 영광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분명히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은혜를 구하며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자신의 자랑이라고 했었는데 돌연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다” 라고 말하면서 그가 원래 가졌던 자랑과 회심 전에 가치 있게 여겼던 것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립보서 3 : 5, 6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과거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의 삶이나 율법주의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지금 강조하려는 것은 ‘나는 세상에 있는 가치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던 사람이었고 그 가치에 도달한 자였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를 신뢰할 만한 자였습니다.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은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해서 정확하게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자신이 태생적으로 참된 유대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됩니다.
열세 살 때 할례를 받았던 이스마엘이나 그의 후손들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되어 유대교로 개종해서 할례를 받은 이방인 유대교도들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단절된 이스마엘의 계통이 아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계통임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할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 받은 바울 앞에서는 결코 할례를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으며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영광과 권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에서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열한 아들과 달리 유일하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유일함은 다른 지파 사람들은 결단코 주장할 수 없는 특별한 영광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바로 베냐민지파 사람이였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함께 다윗왕가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성전이 베냐민 지파의 영토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을 재건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베냐민 지파는 유대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지파였습니다.
이 말은 열두 지파가운데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이 유대인이라 불리며 그 외에는 모두 이방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중에 유대인의 가장 큰 절기가 되는 부림절은 베냐민 사람 모르드게를 통해 이루어진 민족해방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베냐민지파는 다른 지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매우 자랑스러운 지파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부모 모두 히브리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인’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부르던 이름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할 때 히브리인이라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히브리인이라고 표현하는것은 헬라어가 아닌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전통적이며 순수한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요즘 말로 하면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자랑거리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것 만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는 말은 ‘유대 율법으로 말하자면 나는 바리새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을 따지자면 유대 종파들 중에서 가장 엄격한 종파였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리새파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룩함과 성결을 통해 구별되기를 원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나 당대의 유명한 스승인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 사도행전 26 : 5고 말했습니다.
그저 바리새인의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리새인이 된 것이 아니라 바울 스스로 바리새인이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갈라디아1장 14절에 고백 한 것처럼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조상의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나 바울에게 있어서 바리새파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열심있는 바리새인인 자신을 가리켜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했던 바울이 히브리인이며, 베냐민 지파며, 바리새인으로서 쌓아온 모든 좋은 것들과 긍지였던 것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율법으로 추구하려고 했던 가치들과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주고자 하는 가치를 비교해서 내린 결론인 것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자신이 이제껏 태생적으로 혹은 의지적으로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잘못된 삶을 살다 이제 빛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옛날에도 그는 빛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태양을 만났다는 고백입니다.
촛불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농사를 지으려면 태양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비교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다’고 하며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교회안에 누군가가 치열하게 율법가운데 삶을 살았으며, 그 태생과 행위를 들어 말하려고 한다면 나는 결단코 어느 것 하나도 질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교인들이 빌립보 교회 안에 들어온 율법주의에 공감하고 그것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면 그 어떤 율법주의자 보다 완벽한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고 완벽한 율법주의자가 바로 바울 자신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율법은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 의에 불과하더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는 자”였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반대해왔고 교회를 핍박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것과는다른 차원의 말을 합니다.
그는 자기의 의, 즉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옳지 않은 자들을 박해했던 것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옳음을 위해 옳지 않는 자를 정죄하고 심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옳은 것은 바로 율법주의적인 삶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행위와 삶은 칭찬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의 의를 위해, 율법주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 안에서 만난 하나님의 의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의 그의 고백은 그가 만난 하나님의 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 : 5 -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군림하며 강요하는데서 찾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섬기고 낮추는 것을 당신이 가장 중요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제껏 자신이 의로 생각하고 행동해왔던 것들은 나 혼자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나쁜 의’ 였는데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는 모두를 살리는 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가 봐도 흠이 없고 자랑할 만한 완벽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흠이 없고 자랑할만하며 완벽하다는 그 의는 나 하나 의롭게 되기 위해 모두를 죽게 만들었던 의였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결코 사람을 잡아들여 죽게 만들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 율법에 매여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그 율법을 온전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는 나의 의를 포기하고 모두를 살려내는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가운데 거하며 예수 안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기로 했다고 고백합니다.
부활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예수 안에서 발견하고 나의 옳고 의롭고 능력있는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세상으로부터 불러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세상으로부터 불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깨뜨리기 일수였습니다.
칼빈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의 유혹에 쉽게 자신을 내어주고 율법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와 사망의 굴레를 끊기 위해, 율법을 다스리도록 그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주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이 예수 안에서 바라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인데 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자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지 않는 이상 율법은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하지 누구를 살려낼 만큼의 자리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옳음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것을 거룩한 삶이라고들 합니다.
바울은 거룩한 옳바른 삶을 살기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 : 5
이 말씀 앞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 : 1 - 4
우리가 옳은 일을 할 때 옳고 그른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옳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기억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결코 쉽거나 만만한 요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용납하고 기다리는 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혼란과 무질서를 참아줘야 하는 것 같고 그냥 방치해두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옳고 그른 문제에 대해 심판을 내리고, 정죄하고, 처벌하는 것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우리는 이미 예수안에서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 갖는 위력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 신앙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상대가 누구이든 그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돌이킬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에 감동하고 감화될것이라는 믿음도 아닙니다.
나를 심판의 자리와 격렬한 정죄의 자리에서 한발 물러나게 하는 그 주인인 예수안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임재과 역사하심을 확인하게 될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합당해 보이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기준이 되어 누군가를 심판하며 선고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어버리셨습니다.
모든 공생에 가운데 마지막 심판을 결단코 행하지 않으시고 유보하셨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저라면 결코 심판이 아닌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판단하며 심판할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걸음 물러날 수 있다면 성령님께서 상대방 안에서 일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주인되시는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못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도록 비켜서는 결단과 행동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배설물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 배설물도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복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 시간을 갖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방관하는 사람이나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단번에 위력을 발휘해서 세상을 뒤집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행동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방법도 아니며 바울의 증언과도 다릅니다.
다만 복음이 능력인 것을 기억하시고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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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8.18 -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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