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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기 23 : 1 - 17)
2019년 9월 1일 주일예배
욥기 23 : 1 - 17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기 4장부터 27장까지의 말씀은 욥과 그의 친구들 사이에 세 번에 걸친 논쟁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22장 엘리바스의 논쟁으로 시작하는 세번째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세 친구들의 주장을 한 단어로 정리해보면 인과응보의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리는 욥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고통을 당하는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며 교리입니다.
반면에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자신의 무죄를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무죄를 선고 받기 위해 천상의 법정에 서겠다고 호소합니다
그 과정에서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죽음을 바라기 까지합니다.
그러했던 욥의 태도가 세 번째 변론에서는 조금 변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하나님을 의지하며 무죄 선고에 대해 기대와 소망의 말들을 합니다.
욥은 친구들이 주장하는 선한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교리적인 틀을 넘어 실제적으로 세상 가운데 일어나는 하나님의 섭리들에 대해 질문하며 그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과는 달리 고통의 체험을 통해 더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되어진듯합니다.
오늘 욥의 질문과 고민을 통해 우리안에도 역사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엘리바스는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향해 점잖게 타이르면서 회개하기를 촉구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며 항변하는 욥에게 악인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말하며 회개하지 않는 욥을 향해 저주를 퍼붓기도합니다.
엘리바스의 주장은 한결같습니다.
욥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와 심판을 받고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높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천상의 모든 높은 존재들보다 더욱 높고 크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그 두려운 존재 앞에 욥은 자신의 죄를 인해 심판을 받고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회복되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욥기 22 : 4,5 며 욥에게 일어난 사태에 대한 원인을 판단하며 악한 행위에 대한 질책들을 이어갑니다.

욥기를 보며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세친구들의 논리와 주장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나 윤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들은 옳은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기의 결론적인 부분에 세 친구들의 주장에 대해 정당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욥의 시대는 아브라함과 동 시대이기 때문에 모세오경의 율법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록되어진 율법이 없는 시기였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적절한 규칙들과 관습들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세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러한 교리적인 부분들은 이후 주어진 율법 속에서도 발견되어지는 부분들이기도 합니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어도 교리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의 논쟁에 대해 옳지 못하다고 평가하시고 징계하시려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 이유 중 한가지는 세 친구들의 주장은 너무나 교리적으로 굳어져 다양한 환경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욥은 악한 사람이 잘되며 불공평한 세상의 이치를 들어 불만과 항의로 가득차 쏟아내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지만 그의 중심은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에 대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욥에게 그런 관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전에 자신을 둘러싼 훌륭한 보호벽들이 무너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당대에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재력과 아름답고 훌륭한 자녀들, 건강한 육체와 경건의 모범이 될정도의 신앙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고 그곳에서 욥은 현실적인 고통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가운데 자신의 신념과 같은 교리로는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엘리바스와 친구들의 표현처럼 크고 놀라우신 천상의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조차 없는 존재임에도 그는 미물과 같은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여기 한계를 넘어서려는 욥의 몸부림을 보십시요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욥기 23 : 6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납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우주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에덴에 사람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흙으로 빚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시며 그와 함께 영원토록 즐거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은 창조의 주인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후 인간의 범죄는 심판과 정의의 하나님으로만 인식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고하게 고난 당하는 자의 호소를 들으시는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심판과 정의의 하나님만을 외치던 세 친구들의 날카로운 교리적인 공격에 대해 욥의 고백은 하나님께서는 상한영혼을 품에 안으시며 지극한 관심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욥은 용기 있게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죽기를 바라던 욥이 이제는 소망과 적극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을 배푸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욥 자신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욥기 23 : 7
욥은 심판의 자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됩니다.
삶의 현장이 아닌 ‘거기서’라며 심판의 장소가 변경되어지는 것을 봅니다.
‘거기서’는 현재의 생사화복의 자리에서 받게 되는 판결이나 징계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심판의 자리입니다.
현실의 세계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의 주인 또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그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신은 자유로워질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지금 자신에게 닥친 현실 자체를 순금으로 연단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 하나 하나를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확신이며 고백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23:10
욥의 이와 같은 고백은 마치 시편 23편의 고백과도 비슷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편23:4
이해 할 수 없는 고통과 환란 중에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지 않고 끝까지 붙잡겠다는 고백입니다.
어쩌면 욥의 고백은 시편기자의 고백보다 더 깊은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의 고백은 ‘이미’ 사망의 골짜기에서 해를 입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고백하고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백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도 하신다는 믿음이 가득합니다.
결국 욥은 시련의 날을 통해 순금과 같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기 23 : 14
욥의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고백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역사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욥의 이런 고백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욥은 본래 거룩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니 당연할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드러난 욥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보입니다.
그는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욥기 23 : 6,7 며 믿음과 확신에 차서 말했다가 곧바로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기 23 : 8,9며 실망하고 현실앞에 탄식합니다.
그리곤 또다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 : 10 이라고 말하며 14절까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설 자신과 자신을 용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다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욥기 23 : 15-17 며 두려워 떨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같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욥의 이런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겪게 된 어려움에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실망하고 좌절하다 어느 날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가슴에 박혀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쁨 가득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즐거워하며 주변 이들에게 하나님은 역시 살아계시다며 간증합니다.
그러다 얼마가지 않아 사소한 문제에 발이 걸려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냐며 분통을 터트리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저와 여러분과 같은 연약함을 소유한 존재였습니다.
욥은 매번 확신에 차서 고백하고 난 후에는 혹독한 현실 앞에서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욥의 고통과 절망속에서 부르짖던 기도는 응답을 받았을까요?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욥기 23 : 3 – 7

먼저 욥은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3)
고난 이전의 욥은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속죄제를 드리는 예식적 행위로 만족해왔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보호의 울타리들이 무너진 후에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 그분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하나님은 친히 응답하시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보좌 앞에 나아가 자신을 변론하며 호소하고자 했습니다. (3-4)
위로한다며 찾아와 자신들의 주장만 펴고 욥의 형편이나 고통에 무관심했던 친구들의 판단과 정죄에 대해 하나님께 답답한 심정을 아뢰고자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욥이 탄식했던 것처럼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여지는 욥기는,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욥의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계셨음을 알수있습니다.

세번째로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를 바랬습니다. (5)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이유 뿐만 아니라 악인이 잘되는 것과 같은 불편한 진실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하심인지 궁금했습니다.
욥기의 후반부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이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이해하게됩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시거나 다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6)
욥의 이 소망은 욥의 탄식이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되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욥은 자신의 정직함이 증명되어지고 심판의자리에서 무죄선고를 받으리라고 확신하며 기도했습니다. (7)
놀랍게도 욥의 이 모든 간구는 하나님에 의해서 성취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바스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욥의 의로움을 선포하셨고 욥에게 임한 고난과 고통이 회복되어지며 받아누릴 복이 보장되어집니다.

사실 욥은 이 기도를 드리고 나서도 다시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절망에 빠집니다.
그가 당하고 있었던 고통의 상황이 기도 한다고 해서 금방 해결되어지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욥의 기도는 이미 이루어졌으며 끝내 모든 간구들이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욥은 고통과 고난의 혼돈 속에 어둠으로 가득한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지나면서도 그 터널이 끝나는 곳에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믿음 중에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응답하심으로 성취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맞춰갈 때 우리의 믿음은 성숙해집니다.
절망 속에서 드리는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 주는 이익을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고통을 싫어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겪게 되는 고통이라면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둘러싼, 우리를 보호하던 울타리를 제거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괴롭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경계를 확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고 굳어지고 감각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내 주변에 높은 벽을 더 단단하게 둘러 쌓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울타리들을 무너뜨리시고 부수시는 것입니다.
울타리가 주는 거짓평안을 제거하고 실체의 세계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세워놓은 삶의 경계들이 무너져 내릴 때 고통을 경험하겠지만 우리가 더 없이 연약한 존재로 설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기도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전히 고통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욥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가득한 위로와 평강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연약함 가운데 힘겨운 싸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간절히 간구하심으로 응답하시며 성취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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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9.01 -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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