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보내기

이름검색
  IDPASS Auto 회원가입 비번찾기


HOME


교회소개
교회주소
안내 및 공지
행사모임일정


담임목사
주일설교
설교동영상
찬양동영상
중보기도실
신앙칼럼


부서장회의
부서별 자료실
온라인 의견수렴


성도/자녀소식
포토뉴스


찬양과 복음성가
동영상모음

영상찬양모음


릴레이성경쓰기
다국어성경
독일어성경
통역팀 자료실

미술반 자료실


교회홈피 사용안내



주일설교

521 153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정승안목사
Subject   오직 여호와만 바라볼지라 (욥기 14 : 1 - 17)
2019년 11월 17일 주일예배
욥기 14 : 1 - 17 오직 여호와만 바라볼지라


우리는 종종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아이콘으로 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욥기를 읽다 보면 그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나 하나님께 향하는 신원에서 불평과 원망의 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욥의 불평과 원망은 구체적이며 광범위하기 까지합니다.
욥은 어쩌면 너무나도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인물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욥과 같이 부유함과 다복함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임을 감안해본다면 조그마한 나라를 이룰 정도의 큰 부자였습니다.
집 한 채 자동차 한대 쉽게 살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욥의 상황을 공감하라고 하는 건 많은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욥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의 본질적인 질문은 언제나 우리의 궁금증이었고 해결하지 못하던 질문들이었습니다.

욥의 인생은 복과 화가 너무도 극단적으로 변화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을 위로해주고 도와줘야 할 친구들조차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인 말로 욥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왜 이러한 어려움이 온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화해하며 자신의 처지가 회복되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친구들의 공격적인 질문과 조언에 대답하던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대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탄식하며 신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생을 ‘여인에게서 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은 모두가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간의 한계, 공간의 한계, 환경과 여건에 매이는 한계 등 피조물이기에 갖게되는 한계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생애가 짧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걱정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날들은 매우 짧은데 그 짧은 기간 동안 걱정거리들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 인생의 길이가 한뼘에 불과하고 너무도 짧아서 마치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시편 39편 5절
그런데다가 그 짧은 인생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인생들 보다 뛰어난 지혜와 부와 명예를 소유했던 솔로몬마저 평생이 괴로움과 슬픔뿐이고 밤에도 편히 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2 : 23
시편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에도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이라도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며 신속하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편 10절.
욥은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으로 인생에 대해 한번 더 강조합니다.
인생은 꽃이나 그림자 같아서 쉽게 쇠하고 신속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마치 꽃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인양 피고 자라지만 순식간에 지고 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해가 떠서 그림자가 실체인 것 처럼 보이나 어느 순간 어둠이 찾아오고 그림자는 형체도 없이 빠르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고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이와 같은 욥의 탄식은 푸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탄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짧은 생애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인생의 괴로움에 대해서 불평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탄식은 인생이 이처럼 짧고 기쁨과 즐거움 보다는 괴로움과 걱정거리가 가득한 삶인데 그런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감시하시고 심문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연약한 인간에게서 죄를 찾기 위해서 감시하고 심문까지 하시는지 원망 가득한 소리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시하시고 심문하시는 대상인 욥 자신과, 모든 인생들은 짧은 수명과 넘치는 괴로움, 꽃 같은 연약함과 그림자같이 빨리 지나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감시하시며 심문하시는지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과 허물을 찾으시며 정죄하시기 위해서 주목하시며 이런 존재들을 눈여겨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주목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불러 심문하시기 까지 한다고 말합니다.
욥의 탄식은 자신과 같이 헛되고 무상한 존재를 그토록 심각한 눈으로 주시하시며 살피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하소연 하고 있습니다.

욥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을 감시하시고 심문하시는 것은 지나친데 그 이유가 유한하며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욥은 다른 이유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깨끗한 것을 낼 수 없는 더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자 또한 깨끗할 수 없다는 사실은 1절에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일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의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편5절
이처럼 이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에게서 깨끗한 것을 찾으시려는 하나님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이 땅 가운데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합니다.
욥의 문제 제기는 이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정결하거나 의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나마도 그 인생은 짧고도 빨리 지나가 버리며 고통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인생을 그냥 무시하시거나 버려두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불꽃 같은 눈으로 감시하고 불러 심문하셔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불만과 반항이 가득한 욥의 말들은 결국 욥 자신을 비롯해 모든 인생들에게 인간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들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날을 정하셨고 누구도 그 정하신 제한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정하신 제한을 넘어갈 수 없고, 그 짧고 신속히 지나가며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살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인간의 삶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이제 그 무서운 감시의 눈을 돌이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눈여겨 보심만으로도 유약한 인간은 숨쉬기 어렵기 때문에 감시의 시선을 거둬주시면 쉼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감시하시거나 죄악으로 인해 징계치 마시고 연약한 그를 놓아 자유케 하셔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주어진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오늘우리가 읽고 살펴보는 본문은 세 친구들의 권면과 추궁에 대한 답변이면서 하나님께 답답함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의 내용만으로 욥의 믿음과 삶의 자세를 규정할 수 는 없습니다.
대담하게도 하나님을 향해 속된말을 토해내는 욥의 탄원을 숨죽여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욥의 궁금증은 저나 여러분 혹은, 모든 인류의 궁금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함에 가슴 아파합니다.
또한 거룩하며 성결하게 살아야 함에도 원죄와 죄의 유혹에 흔들려 번번히 무너져 절망하곤 합니다.
이제는 좀 살만하게 도우셨으면 좋겠는데 긴 터널과 같은 인생의 고난과 걱정들은 끝을 가늠할 수 조차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는데 마치 내가 무슨 죄를 지어 그런건 아닌지 도통 알 수조차 없습니다.

풍족함에도 근신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던 욥에게 다가온 풍랑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을 찾을 수가 없는데 친구들의 걱정섞인 조언은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욥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생들은 짧은 수명과 넘치는 괴로움, 꽃 같은 연약함과 그림자같이 빨리 지나가는 존재이며 그 인생이 바로 자신임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죄로부터 출생한 거룩할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주어진 고통과 고민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쉼을 주시고 남겨진 시간 기쁨과 복을 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은 욥의 고백입니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욥기 14 : 13 - 17

결국 이 땅의 삶 속에 고통과 고민과 죄의 굴레로부터 참된 해방은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연합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며 안식과 평안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안식과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음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거하는 자만이 참된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 중 마주하게 되는 고통과 숨쉴 수 조차 없이 조여오는 고난가운데 놓여있습니까?
고난의 이유를 찾기보다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혜가 있어야 겠습니다.

500여년전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던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존낙스, 얀후스, 마틴 루터, 칼빈등 수많은 개혁자들이 잘못된 믿음과 신념에 저항하며 개혁을 외쳤습니다.
이들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생각해보면 의지가 강하고 신념을 위해 생명마져도 불사할 카리스마를 소유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 이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순교를 선택하며 불의와 악에 맞섬에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또한 연약한 존재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욥도, 저와 여러분과 같은 모든 성도들도, 아무리 강한 성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지라도 여전히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욥의 지혜는 유한한중에 무한한 하나님을 바라본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욥의 지혜와 결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프린트출력을 위한 화면보기
DATE: 2019.11.17 - 10:42


 이전글 그런즉 깨어있으라 (마태복음 25 : 1 - 13)
 다음글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사사기 9 : 7 - 15)
글남기기삭제하기수정하기답변달기전체 목록 보기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보기
521Simple view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 : 8 - 10)2019.12.01 29
520Simple view그런즉 깨어있으라 (마태복음 25 : 1 - 13)2019.11.24 47
519현재 읽고 있는 글입니다.오직 여호와만 바라볼지라 (욥기 14 : 1 - 17)2019.11.17 59
518Simple view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사사기 9 : 7 - 15)2019.11.10 83
517Simple view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 6 : 4 - 9 )2019.11.03 77
516Simple view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시편 98, 116편)2019.10.27 85
515Simple view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라 (신명기 16 : 13 - 17)2019.09.29 210
514Simple view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창세기 28: 10-19)2019.09.22 206
513Simple view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마가복음 3 : 20 -...2019.09.15 215
512Simple view내게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 : 1 - 10...2019.09.08 257
체크된 항목 한꺼번에 삭제/복사/이동 하기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삭제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이동
체크된 항목 복사 체크된 항목 복사
현재페이지가 첫페이지 입니다. 다음페이지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끝페이지
글남기기 새로고침
이름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제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내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 메인화면으로 돌아가기

인터넷성경

(c) seit 2008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SEONHAN MOGZA Evangelische koreanische Gemeinde Berlin e.V., Bundesallee 76A, 12161 Berlin
Tel. (030) 8550-6368
Mobil: (0176) 6318-9090 
Postbank Kontonummer 470 401 07, BLZ 100 100 10
info@mogza.com

2019년 교회표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니"
(빌 1:20)

집회안내

주일예배:오후 3시
(주일학교: 13시 30분)
수요예배: 오후 5
토요기도회: 오전 7시

주요 사이트 바로가기

연중 행사계획표 
온라인 교우주소록
 
월별 생일자 명단

*** 동영상 다시보기 ***


파트너 독일교회

Zum Guten Hirten
Philippus-Nathanael

한글학교

독일어 세미나

베를린
유학/관광/생활정보
벼룩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