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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승안목사
Subject   그런즉 깨어있으라 (마태복음 25 : 1 - 13)
2019년 11월 24일 주일예배
마태복음 25 : 1 - 13 그런즉 깨어있으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열 처녀의 비유, 슬기로운 다섯 처녀로 불리우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24장에서부터 출발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고 이후 감람 산 위에 앉아계실 때 제자들이 조용히 다가와 ‘어느 때에 성전이 무너질것인지’, ‘메시야의 도래는 언제인지’, ‘세상의 종말의 징조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임하게 될 재난의 징조와 메시야의 도래를 설명하셨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심은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 : 36 셨습니다.
종말의 시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들 마져도 알 수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 : 44 시며 제자들의 관심을 종말의 시기가 아닌 그 때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롭고 충성된 종의 비유를 통해 어느 때 돌아올 지 모를, 그 주인의 기쁨이 되는 삶을 지속적으로살아내야 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에 이어지는 비유가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결혼식을 앞둔 열명의 처녀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라고 하시며 비유의 주제가 ‘천국’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결혼식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설명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며 본문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천국’, 또는 ‘하나님 나라’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우주적인 폭과 넓이와 깊이를 담고 있기에 간단히 한두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시도해 본다면 천국은 회복이며 소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서 세상 왕들의 압제와 핍박으로부터 고통 받는 성도들의 모든 소망이 되는 회복과 기쁨의 약속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관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유대인에게는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지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그날을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유의 흐름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인 메시야의 도래나 종말의 때는 결국 천국이 이루어지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지는 때입니다.
세상이 깨닫든지 무지함 가운데 있든지, 인정하든 부정하던지와는 무관하게 장차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였으며 완성되어집니다.
장자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소망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태복음 25 : 1 라고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결혼식 이야기입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신랑과 신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에는 신랑과 신부가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 열 명의 처녀들입니다.
사실 결혼식에 들러리의 역할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들러리가 없어도 결혼식은 진행될 수 있습니다.
들러리들이 없어도 신랑과 신부는 조금 불편할 뿐이지 얼마든지 결혼식을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임함이, 하나님 나라 완성이 들러리들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일 수 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만 천국이 임하는 건 나의 의지나 바램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들러리 열 처녀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향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해가 지는 시간부터 시작하며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올 때 길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안내하며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입니다.
밤길에 광야를 지나 익숙하지 않는 신부집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기에 신부 들러리들은 멀리까지 나가서 언제올지 모를 신랑과 일행들을 기다리다가 그들을 만나면 등불을 밝히고 신부의 집까지 안내합니다.
이들은 신랑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신랑이 오고 신랑과 신랑의 일행들을 신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고 나면 모든 임무가 마쳐지고 결혼식을 즐기며 기뻐할 일만 남아있습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 또한 메시야의 시대를 기다려왔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열심당이나 에세네파도 다 그런 종말의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었듯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도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상시 구분되지 않습니다.
비유에서도 열 처녀가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모두 등을 가지고, 심지어 똑같이 졸고 똑같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는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충분한 기름을 준비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입니다.
이 기름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을 갖고 있습니다.
행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선행이라고 하기도 하고 루터와 같은 이들은 그 기름을 믿음으로 보기도했습니다.
또 성령으로 해석하며 성령을 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다보니 이 기름이 주일성수가 되기도 하고 십일조가 되기도 합니다.
혹은 전도나 성경을 읽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름을 말씀으로 성령으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성도의 행실로 보게되면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기름을 기름장수가 팔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누어줄 수도 있습니다.
빌려주고 나중에 돌려 줄 수도 있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만약 이 기름이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도구가 되거나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어떤것이라고 한다면 이 비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름은 돈을 주고 살수도 주고 받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기름이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령의 은사가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한다면 내게 믿음을 주는 누군가를 찾아 헤멜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돈을 주고 강의를 듣거나 집회를 쫓아다니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기름을 소유하기 위해 다른 것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물질이나 시간이나 환경등의 여건들이 가능한 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빌려 주고 받기도 하고 팔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문의 핵심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13절의 “그런즉 깨어 있으라!”입니다.
그렇다면 충분한 기름은 “깨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지혜로운 사람은 충분한 기름을 가지고 있는 자인데, 그는 곧 깨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인데, 그는 곧 깨어있지 않은 자입니다.
깨어있다는 게 단지 잠을 자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기다리던 신랑이 늦어지므로 미련한 처녀들도 슬기로운 처녀들도 같이 졸며 같이 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신랑에 대해 깨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깨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이시며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깨어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 비유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어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깨어 있지 못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어있지 못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모든 증언들이 예수에게로 향해있지만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으셨고 공생애 내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하셨지만 율법을 연구하던 학자들도 종교지도자들도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이 모든 일에 대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도래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우리가 참여하느냐 아니면 참여하지 못하느냐가 거기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비유에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있습니다.
8절에서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말합니다.
미련한 처녀라고 하지만 사실 기름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예상보다 신랑이 늦게 와서 기름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함께 결혼식을 준비하던 슬기 있는 처녀들이 친구 사이인데 기름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매우 야속하게 거절합니다.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태복음 25 : 9
NIV에는 ‘싫다’라고 딱 잘라서 거절해버립니다.
이런식의 대화는 보편적인 기독교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며 그의 백성들 모두는 사랑을 행하는 자여야 하는데 같은 목적으로 함께하던 이들의 요청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절해 버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늦은 밤에 어렵게 기름을 사가지고 왔는데 이미 신랑은 신부 집으로 들어간 후입니다.
결혼잔치가 시작된 신부 집은 문이 굳게 닫혀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다른 사람들도 아닌 신부의 들러리에게는 누구라도 문을 열어줄 것 같습니다.
아니 열어 주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비유의 주인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며 문전박대까지 합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게 기독교의 사랑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의 연약함을 포용조차 하지 않는 긍휼하심이 없는 주님이신 걸까요?

예수님의 이 비유는 이런 부가적인 함정에 빠지고 나면 본질을 살펴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비유는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리는 때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알고, 신랑과 신부를 알며,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일하던 이들이라도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도 참여할 수 없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복음에 대해,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어있으라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는 것과 깨어 있지 못한 것은 이처럼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과연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는 단지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늘 생각하고 여기 저기 재림의 흔적들을 쫒아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그분과 함께 시작되었고 또 그분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두려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자신이 이미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하나님 나라는 늘 자신이 죽은 뒤에나 들어가는 나라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어 있지 않은 겁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굳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분투하며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질 자신의 소망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냥 세상의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종려가지 들고 호산나 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왜 입니까?
눈에 보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눈으로 확인하고 달려가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 때가 되면 이미 늦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선포되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확실한 증거를 전하며 장차 임하게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멀리까지 나선 들러리 처녀와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깨어있는 자만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자들은 지난 날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잊고 기뻐하며 즐거운 축제에 참여하게 될것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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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1.24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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